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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Feb 01. 2023

[시카고타자기] 나 홀로 미국 중남부 로드트립(1)  

#10 일상이 아닌 여행으로 처음 마주한 미국

첫날 경로 : 시카고 -> 어바나샴페인(일리노이) -> 세인트루이스(미주리)

화요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와 분주하게 짐을 꾸렸다. 4일간 자동차로 하는 여행인지라 아주 세밀하게 짐을 챙길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나 생길 불편함을 막고자 신경이 쓰이긴 했다.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다. 어차피 새로울 거 없는 미국의 고속도로 풍경이지만, 길을 나서는 내 마음만큼은 다른 느낌이었다. 미국은 나에게 지금까지는 '생존', '일상'을 위한 공간이었지, 기존의 다른 나라처럼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의 '여행'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르게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크게 틀고(때로는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하염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 옆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노라니 진짜 여행을 떠나는 중이구나 싶었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일종의 '맛집'처럼 유명해지거나, 각종 산해진미, 간식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익숙한 한국인에게 미국의 휴게소는 정말 차원이 다른 낙후성을 보여준다. 대게는 주유소에 붙어있는 편의점 정도가 전부이고, 운이 좋다면 인근에 '맥도널드', '서브웨이' 등의 일부 프랜차이즈 스토어들이 전부다. 그 흔한 스타벅스 커피도 찾아보기 힘들며, 나처럼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인 사람은 아이스커피는 포기해야 한다. 미지근한 미국 특유의 '브루 커피'가 질려서 가끔씩 '스타벅스 캔 커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연비가 적당한 차라면 한번 주유로 땅끝에서 땅끝까지 운전이 가능한 한국에 반해, 미국은 워낙 땅이 넓은 지라 주유를 위해서라도 고속도로 휴게소는 꼭 여러 번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거의 10번 정도 들르다 보니, 어느덧 이런 휴게소에 적응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긴 거리를 끊어 갈 겸, 오래간만에 대학교 캠퍼스가 보고 싶기도 해서, 중간에 '어바나-샴페인'이라는 도시에 들렀다. 대학 위주의 도시답게 캠퍼스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도시였다. 한창 학기 중인지라 도시에 학생들로 가득했는데, 2006년 초에 졸업하고 대학이란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살았던 지라, 캠퍼스와 학생들의 모습만 봐도 엄청 마음이 설레었다. 특히나 미국의 주립대학이라니.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98년 즈음의 나에게는 '미국으로 대학 간다는 것'은 엄청나게 특혜 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정말 '꿈같은' 얘기였다. 금전적인 면이나, 공부의 측면에서도 나와는 너무나도 떨어져 있는 다른 세상의 얘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살면서 계속 '언젠가는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03년, 비록 짧은 기간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라는 걸 하면서 작게나마 경험해 봤지만 여전히 그 갈증은 해소되지 못했고, 졸업 후 17년간의 직장생활과 현실적 문제 속에서 지금 껏 마음 속에 접어두고 있어 왔다.

단과 대학들의 건물들을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대화를 하는 학생들, 그룹 스터디를 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달리 (명품을 챙겨 입고, 트렌치코트에 하이힐을 신는 그런..) 남녀 불문하고 모두 운동부 같은 차림새였다. 후드티에 트레이닝팬츠, 여학생들은 레깅스로 대동단결한 모습이었고 머리도 부스스하여 자다 일어난 것처럼 보였는데, 학습량도 많고, 과제도 많아 외모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거나, 아니면 원래 미국 스타일이 그런 것과 합쳐진 이유인듯했다. 캠퍼스 구경에 허기를 느낀 나는 간단한 구글 검색 후에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태국 음식을 주는 학교 내 식당을 발견하여 찾아가 보았다. '판다 익스프레스'의 태국버전 느낌이었는데, 허름한 식당 건물 한편에 학생들, 교직원 들 사이에 앉아서 식사를 하니 기분이 묘했다.

'내 나이 40이 넘었지만, 언젠가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으려나?‘

마음속 설렘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첫날밤을 보내야 할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였다. 세인트루이스라는 도시이름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실제로 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간단히 볼만한 곳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을 향해 줄 발했는데 약 2시간 반 정도의 거리였다. 다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였는데, 좀처럼 보기 힘든 중남부의 '스노 스톰' 소식이었다. 이상 기온으로 계속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는데, 막상 내가 여행 가려고 하니 눈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도시에 도착하고 나니 이미 해는 기울어 있었고,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인터넷으로 그 유명하다는 '버드 와이저 공장 투어'도 예약해 놨고, Gateway Arch라는 유명한 건축물도 보려고 다 준비했는데 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눈 오는 밤을 함께해 줄 맥주를 사러 인근 '월그린'(약국인데 편의점 기능도 있다)을 찾아갔다. 월그린에 도착해서야 내가 미국 중남부에 왔구나를 실감하였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흑인이었다. 게다가 내가 방문한 동네가 약간 빈민가(Hood라고도 한다)였는지, 주차장에 있는 차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월그린 안에도 경찰들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었다. 하필이면 맥주를 팔지 않아 나는 그 동네에서 두어 군데를 더 긴장한 상태로 돌아다녀야 했다. 안전하지 않을 거 같은 기분에 '그냥 돌아갈까?'도 했지만, 이 눈 오는 긴 밤을 맨 정신에 보낼 수도 없을 뿐더러, 눈오는 저녁에 먹을 곳을 찾기도 애매해서 먹을거리도 필요한 터였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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