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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Jan 18. 2023

[시카고타자기] 일상탈출을 꿈꾸며

#9 이 큰 땅덩어리에 살면서 답답하다니?

미국의 땅덩어리는 정말이지 광활하다 못해 살면서 전국 50여 개 주를 한 번씩이라도 발끝으로 터치라도 해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예전에 포틀랜드에서 생활했던 친한 친구 녀석은 출장을 가던 길에 내비게이션에서 직진 1,000킬로 후 좌회전이라는 표기도 봤다고 하니 그 사이즈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의 일상이란 게 결국은 본인의 생활 반경 몇 킬로 정도에서 대부분 일어나고 마니, 부지런 떨면서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지 않은 한은 계속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다.

어느덧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 일상도 그럭저럭의 루틴(routine)이 생겼다. 특히 요일마다의 일상이 거의 고정적인데, 이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니 문득 '갑갑하다'라는 느낌이 들고 말았다. 원래도 워낙 '역마살'이 낀 인생이었고, 스스로도 한 곳에 너무 오래 정착해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보니, 이런 느낌이 어쩌면 당연한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고, 남들과는 전혀 낯선 환경에 건너와 새로운 삶을 이어가면서도 이런 느낌을 갖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란 인간 정말 못 말리겠다."


그렇다고 지금의 생활이 너무 안정적이어서 권태감이 든다거나, 일상이 단조롭다 뭐 이런 기분은 아니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남의 나라니까 매일매일 조심해서 살다 보니 일종의 긴장감도 갖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느낌은 철저하게 '공간'에 대한 답답함일 것이다. 약 20킬로 반경에서 매일 가는 길, 가는 장소를 반복해서 이동하며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일종의 권태감 인지.. 또는 무언가 새로운 장소가 주는 그 설렘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살 때에도 정말 수많은 곳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신혼 때부터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번 이상은 꼭 어딘가로 떠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일상을 지속할 수 없을 거 같은 속 마음 때문이었던 거 같다.


생각 같아서는 요즘의 수많은 여행 유튜버들처럼 배낭하나 짊어지고, 낯선 환경 속으로 던져져 보고 싶기도 하다. 남미의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다니며, 지역의 음식들도 맛보고, TV에서나 봤던 많은 절경들을 눈에, 내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나에게 많은 시간적, 경제적 자유,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건 뭐 내 또래의 남편들, 아빠들은 대부분 해당될 내용일 듯하다. 또 막상 혼자가 될 생각을 하니 그다지 즐거울 거 같지 만은 않다.


와이프와 며칠간 대화를 나누고, 일정을 조율해 본 뒤 나에게 약 3~4일이 시간이 주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는 다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3,4일의 시간 동안 아주 멀리는 못 가보겠지만, 지금의 일상을 벗어나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는 그래도 짧지는 않은 시간이다. 아직은 아무런 계획이 없지만, 조만간 실행에 옮겨보려 한다. 경비는 최소화하면서 가급적 많은 장소를 가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비행기보다는 자동차 여행이 나을 것이고, 숙소도 가급적 저렴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나 혼자 갈 테니 깨끗한 몇 성급의 호텔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물론 유튜버들처럼 다인실 도미토리를 전전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그런 숙소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의 저가 숙소는 뭔가 살인마가 나올 거 같은 ‘Inn'이 대부분이다.) 낯선 환경에서 철저하고도 지독한 고독을 경험해 보고 다시 소중한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서 돌아왔으면 한다.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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