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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Feb 07. 2023

[시카고타자기] 나 홀로 미국 중남부 로드트립(2)

#11 세인트 루이스에서 캔자스 시티, 그리고 다시 집으로

둘째 날 여정

세인트루이스(미주리) -> 컬럼비아(미주리)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봐야 할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가장 유명한 Gateway Arch라는 건축물이자 전망대이며, 나머지는 버드와이저 Brewery 투어이다. 아쉽게도 전날의 폭설로(시카고에서 온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정도지만) 버드와이저 투어는 전격 취소되었다. 다행히도 Gateway Arch는 오픈을 해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Gateway Arch는 정확히 높이와 가로길이가 똑같은 반원형의 아치모양인데, 그 높이는 약 200미터 정도라고 한다. 미국의 서부 진출 확대를 기념하기 위해 전국에 디자인 공모를 했고, 그중에 선택된 디자인이 바로 현재의 이 모습이라고 한다. 그 밑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웅장하기도 하고, 뭔가 기하학적인 구조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여기가 주차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공간을 지나서 입구에 들어가면 의외로 모던하게 된 전시 공간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요런 쉐입의 건축물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게이트웨이 아치
여기가 주차장 맞나??

눈이 온 다음날, 그것도 주중 오전이라 관람객은 나를 포함 총 4명밖에 없었다. 스타워즈에 나올 법한 옛날 느낌인데 미래적인(?) 전용 엘리베이터(대관람차처럼 타원형을 올라가면서 평형을 유지한다)를 타고 200미터 상공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니 세인트루이스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주차장에 홀로 서있는 내차를 찾아볼 수도 있었다. 다행히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의 남산타워처럼 도시를 대표하는 시그니쳐 스폿을 보고 나니 그래도 무언가 이 도시를 봤다는 기분이 들긴 했다. 미국 남부에 왔으니 점심 메뉴는 이미 마음속에 정해져 있었다. 바로 남부식 '바비큐'다.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텍사스의 수많은 도시들은 제 각각 자신만의 바비큐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보면 뭐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그 사이에는 소스나 주요 사용 부위, 굽는 방식 등으로 상당히 다양화되어 있다. 몇 년 전에 샌안토니오에서 바비큐를 맛보고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바비큐는 이번 여행에 꼭 먹어야 할 음식리스트로 정해놓았다.

나름 현대적인 내부 전시관
스타워즈 같은 엘리베이터
모두들 바깥 구경에 열중
전망대에서 본 세인트루이스 중심가
전망대뷰 2, 내차는 무사히;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장 유명한 바비큐는 'Pappy's'라는 곳이다. 명성에 걸맞게 이미 주차장은 꽉 찼고, 주중 점심인데도 입구부터 줄을 서 있었다. 20여분의 기다림 끝에 입장해서는 평소에 먹고 싶었던 pulled pork와 Brisket을 주문하였고, 사이드로는 칠리 옥수수와 코울슬로를 선택하였는데, 동네 탑티어 맛집답게 먹는 내내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4가지 소스가 구비되어 있는데, 각각의 소스가 다른 매력을 주어 바비큐 맛을 더 돋구어 주었다. 미국에 와서 혼자 밥 먹는 것에 어느덧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어떤 곳에 들어가서 혼밥을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주눅 들지 않게 되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하였다. 유명 여행 유튜버들처럼 카메라라도 올려놓고 맛 평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뻔뻔함이 생긴 것이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유튜버를 시작할까 아주 잠깐 고민되던 순간이었다.

캐주얼한 느낌의 Pappy's
내가 시킨 pick2
Pappy's 내부 모습


세인트루이스에서는 가장 힙하다는 'Del mar loop'에 가서 힙스터 들 사이에서 커피도 마셔보고, 에버랜드 옆에 있는 삼성자동차 박물관을 뺨칠만한 '올드카 박물관'도 여행객 모드로 구경하는 등 소소한 도심 속 여행을 마쳤다. 다음 행선지는 미주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처제 네 커플을 잠시 방문할 겸 미주리 컬럼비아였다. 컬럼비아는 미주리대학이 있는 소도시인데, 도시 자체가 대학이라고 할 만큼, 미주리 대학은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벌써 미국 생활 3년를 넘어가는 처제가 해주는 따뜻한 한식 집밥을 얻어먹고 오래간만에 호텔이 아닌 집에서 잠을 자고 나니, 긴 여행으로 방전되었던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잠시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2일 넘게 혼자 있으니 말할 기회가 없다가, 밤 11시까지 '내 언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니 더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런 여행 중간의 '쉼표'는 다시금 여행을 하게 해 주는 힘이 되어 준다.

세인트루이스의 힙지로 ‘델마르 루프’
블루보틀 아니고 블루프린트 커피
의외로 좋은 차가 많았던 올드카 뮤지엄
처제가 차려준 한식집밥 한상


셋째 날 여정

컬럼비아(미주리) -> 캔자스시티(미주리)

처제의 남편, 즉 동서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미주리 대학은 대학시절부터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던 이름이었다. 신문방송학과 전임교수님이 그곳에서 유학을 했고, 강의 시간 내내 틈만 나면 "예전에 내가 공부했던 미주리에선 말이야.."의 멘트를 자주 날리시곤 했던지라 도대체 미주리대학은 어떤 곳일까 하고 학창시절 내내 무한의 상상을 하곤 했다. 20년이 훨씬 지나서야 나는 그 미주리 대학에 도착해 있었다. 동서는 다른 과정이지만, 나를 위해서 '저널리즘 스쿨'을 구경시켜 주었다. 클래식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신방과답게 실습 스튜디오도 있고, 학생들이 그룹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주 옛날(이 되었지만 이제)에 신방과 전공자로서 곳곳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잠시 예전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미주리대학 관광객 기념샷
미주리대 신방과(?) 풍경

처제 가족과 아쉬운 작별 후에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행선지는 캔자스 시티이다. 캔자스 시티는 캔자스 주에도 있지만, 정작 메인 도시는 미주리에 있는 캔자스시티이다. 뭐 최근까지도 캔자스 시티를 캔자스 주로 합병하려는 노력도 있었다고 하는데, 무언가 두 주 사이에 깊은 사연이 숨어 있는 듯하다. 캔자스시티는 도시 전체가 들떠 있었다. 바로 캔자스시티의 소속 미식축구 팀이 결승 진출을 했기 때문이었다. 많이 알려지다시피 슈퍼볼이란 미식축구 결승전은 미국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이다. 잠시 들른 유니온 스테이션에서는 결승 진출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막상 볼 것도 없고 감흥도 없는 내게 주차비로 지불한 15불이 아까워서 깊이 후회했다.

유니온스테이션  주치비15불;
캔자스시티 슈퍼볼 진출 축하!

오후 늦게 도착한 캔자스시티는 나름 고요하고, 멋스러운 도심을 갖고 있었다. 일단 도심에 트램이 다니면 무언가 정취가 느껴진다. 나름 안전할 거 같아서 선택한 쇼핑몰 근처의 숙소였는데, 길거리에서 약에 취한 사람도 만나고, 식당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등 생각보다는 안전과는 거리가 먼 듯했다. 요즘 미국은 어딜 가나 조심해야 하나보다. 역시나 저녁은 캔자스 식 '바비큐'였다. 유사한 형태이긴 했으나, 너무나 레스토랑스러운 분위기가 다소 안 어울렸고, 맛 역시 세인트 루이스 스타일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다음날에는 캔자스시티 다운타운 쪽으로 가서 전날의 숙취를 달래기 위해 베트남 쌀국숫집을 찾았다. 주인부터 파트타이머까지 모두가 베트남 사람들이 하는 '찐' 베트남 집이었다. 진땀을 흘리며 오래간만에 속 시원한 해장을 경험했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City Market'을 둘러보고 로컬 커피집에서 커피도 한잔하고 멕시코 와하카산 빈을 기념품으로 샀다. 캔자스 시티까지 와서  멕시코산 커피를 사다니.. 참 아직도 나는 멕시코를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유구한 역사의 시티마켓  볼거리가 많았다
어린 처자들이 커피를 볶아주던 시티마켓 카페
발음이 궁금해 물어봤더니  그냥  ‘엔’ 이란다
나의 속을 달래주었던 베트남 쌀국수
캔자스식 바베큐 - Burnt end란 부위가 맛있음

넷째 날 여정

캔자스시티(미주리) -> 집(시카고 노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었다. 4일여간 2,000킬로 넘게 달렸고, 3일 밤을 보냈다. 오래간만에 차에서 듣고 싶은 노래도 실컷 듣고, 유튜브도 많이 들었다. 미국의 다양한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러보기도 했고, 한 손으로 운전하고, 한 손으로 소스가 뚝뚝 흐르는 핫도그를 먹어보기도 했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갑작스레 기획하고, 홀연히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도 내 마음이 어떤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철저히 낯선 환경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나니, 무언가 나를 짓눌렀던 현재의 상황과 그것이 주는 스트레스의 무게감이 다소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또다시 내일부터는 기존 같은 일상이 시작되겠지만, 이번 여행 후의 나는 조금이나마 더 담대해지고, 신선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걸로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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