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노화 시대에 고속 노화를 얘기하다
엄청 동안이시네요!
조금 자화자찬이지만(나는 내 자랑을 엄청 싫어하는 성격이다. 누가 칭찬이라도 하면 부끄러워서 엄청 부정하는 그런 성격..) 살면서 항상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들어왔다. 남자치고는 하얀 피부에 잡티가 없고 얇은 눈매에 입이 작다 보니 그런 거 같다. 특히 해외에 나가면 동양인 버프가 더해져 40이 넘어서도 20대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했다. *다들 느끼겠지만 해외에서 동양인은 대체로 본 나이보다 어리게 본다.
요즘엔 거울 보기가 부담스럽다. 푹 꺼진 눈 밑에는 주름이 선명하고, 어느덧 얼굴에 잡티 같은 것도 많이 생겼다. 세월의 흔적이 이제 얼굴에서 느껴진달까. 와이프는 요즘 들어 내 얼굴에서 우리 엄마 모습이 보인다고도 했다. 기분 전환 등 겸사겸사해서 오랜만에 헤어 스타일 바꾸었다. 흔히 요즘 젊은 남자들이 많이 하는 가르마 스타일을 시도해 봤다. (나는 40 평생 항상 짧은 머리를 유지해 온 사람이다.) 미장원에서 나와서 차 백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헤어 스타일은 죄가 없다. 내가 문제다...
미국에 온 지 어느덧 3년. 내 나이 46세. 생일도 지나서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40이 꺾였다. 요즘 부쩍 그 3년 동안 많이 노화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말 그래도 “폭싹 삭았수다”이다. 와이프가 찾은 노화의 원흉은 바로 미국의 ‘노 필터’ 강한 햇살이다. 좋은 것이긴 하지만, 미세먼지 없이 쨍한 하늘이다 보니 아무리 선크림을 사계절 꼼꼼히 챙겨 발라도 햇살로
부터 내 피부를 보호하기 어렵다. 야외 활동이 부쩍 늘어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도 한몫할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차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앞유리에 선팅이 없다. 선팅이 거의 없는 차를 매일 같이 타고 다니니 자외선에 노출되는 시간도 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강한 햇살은 결국 내 피부에 강한 세월의 흔적을 남긴다.
*앞유리 선팅을 규제하는 것은 범죄 예방 차원이라 생각된다. 사제로 진하게 선팅을 할 경우 경찰에 붙잡혀 벌금을 물기도 한단다.
강한 햇살 말고도, 이민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마음고생, 향수병 등이 버무려져 고속노화를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다. 가끔 한국에 있는 친구, 지인들과 영상통화를 하거나, 그들의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3년 동안 나는 늙고 그들은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은 느낌이다. 착각이거나 진짜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미국에 와서 내 라이프 스타일은 훨씬 건강해졌는데도 말이다. 운동도 전 보다 많이 하고 건강하게 먹는다. 심리적인 힘듦이 어느덧 얼굴에 나타나나 보다. 주위에서 가끔 마주치는 이민 1세대 분들을 보면 그래서 그런지, 연세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시는 분들이 많다. 요즘 60대도 젊어 보인다는 TV에 나오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얼마 전 미국 드럭스토어 체인인 ‘walgreens'에 가서 돋보기안경을 써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잘 보이는 거다. 어느덧 약병 뒤에 있는 아주 작은 글씨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안경을 쓰고 보니 갑자기 폰트 15라도 된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 눈마저 노화가 진행되는 것인가, 돋보기안경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나 보다. 요즘 부쩍 자기 전에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서 인지도 모르겠다. 주문을 하면 여러 개의 안경을 보내주고, 마음에 드는 한 개 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반품이 가능한 ‘와비 파커’ 안경을 알아보고 있다. 다만, 그 주문을 최대한 미루고자 한다. 돋보기안경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최대한..
한국에선 요즘 ‘저속노화’가 대세라는데, 갑자기 웬 노화 타령인가 싶지만, 요즘 꽤나 나이 드는 것에 진지해졌다. 이렇게 푸념할 시간에 gym에 한번 더 가고, 술을 줄이는 게 노화를 늦추는 지름길임을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