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기다리다 망부석이 돼 가고 있는 사연
22년 10월, 영주권 신청 서류를 제출하면서 와이프에게 건넨 말 한마디는, “설마 현 정권 중에는 영주권이 나오겠지?”였다. 25년 1월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신청 후 2년 안에는 무조건 나오겠지라는 확신에 의한 계산이었다. 또는 그렇게 믿고 싶었던 마음으로.. 거짓말처럼 2년 반이 지났고, 정권은 바뀌었으며, 여전히 내 영주권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 현실이 되었다. 신청 당시 빠르면 6개월에서 늦어도 1년 정도 예상한다던 이민 변호사의 예측은 정확히 빗겨나갔으며, 아직도 언제 나올지 모를 답보상태이다. 영주권자 배우자 초청 건으로 진행되는 케이스인데도, 현재 영주권 문호가 한참 후퇴했다가 닫혀있는 상태이고, 새로운 정부가 상당히 타이트하게 국경을 관리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전망이 밝지 않은 상태이다.
*미국 이민국에서는 매달 초 영주권 문호를 발표하는데, 이 발표되는 기간 안에 들어간 사람만 프로세싱이 진행된다는 뜻이며, 그 날짜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영주권이 안 나왔어도 미국에서 체류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운전면허도 있고, 소셜넘버(한국의 주민등록 번호 같은)도 있으며, 정식 워크퍼밋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취업도 가능하고, 이미 내 이름으로 된 법인도 갖고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미국 밖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을 떠나는 것은 내 자유이나 (미국은 본인들의 나라를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하리만큼 일도 관심이 없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신분인 것이다. 미국 들어온 지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내 나라 한국에 못 가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서글픈 일이다. 백번양보해서 보고 싶은 친구들 못 만나고, 내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소중한 지인들에게 잊혀 가는 것은 견딜 수 있다고 하자, 3년 가까이 부모님을 볼 수도 없고, 부모님에게 내 얼굴, 며느리, 손자 얼굴 못 보여드리는 불효는 때때로 참기 어려운 감정으로 가다 온다.
얼마 전 기존 투자이민을 대체한다는 ‘골드 카드’를 출시한다고 새로운 정부가 발표하였다. 골드 카드의 가격은 무려 5백만 달러, 한화로 약 70억이 더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투자이민이 100만 불 정도 했으니, 약 5배 정도 오른 셈인데, 이제는 정말 ‘돈 많은 ‘ 사람들에게만 영주권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의회를 통한 정식 입법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라 언제쯤 현실화될지는 모르겠지만, 관세, 이민정책 등 최근 두 달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밀어붙일 것 같은 전망이다. 미국 영주권이 이 정도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또한 국경을 걸어 잠그고자 하는 정책의 일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주권이 늦어지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바로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였다. 미국을 벗어날 수 없는 내 상황에서 그게 가장 걱정되었던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 우려했던 일은 얼마 전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잘 지내고 계시던 아버지에게 갑자기 암 소식이 찾아온 것이다. 소변보는 것이 불편하셔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봤더니 방광에 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진전이 상당히 되어서, 수술을 해야 하는 데 아버지는 70대 후반이시고, 이미 심장 관련 큰 수술을 하신 적이 있어서, 수술 후 회복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가 만약에 돌아가시기 라도 하시면 어떡하지?”
아버지의 건강과 쾌유를 빌면서도 동시에 그동안 애타게 기다려왔던 영주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 수술날이 잡히고, 나는 굳게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위급해지시면 바로 한국에 가야지. 영주권 박탈되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야지. 그게 아들로서 할 도리지...
다행히 아버지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긴 하였지만, 다시 의식도 회복하셨다. 내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신 것인지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걱정에 눈물이 났다. 덕분에 나는 여전히 미국에서 언제 나올지 모를 영주권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다. 이번 정권에 좀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기다린다.
뉴스를 보니, 최근에는 영주권을 오래 보유했던 사람들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국 입국 시 추방당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미국 생활.. 참 갈 길이 멀다.
[표지] 얼마전 산이 그리워 찾아간 콜로라도 로키산맥 고속도로.. 봄에도 만년설이 존재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