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3년, 영어 얼마나 늘었니?

미국에 살면 영어는 다 잘할 거라는 환상에 대해서

by 마틴팍
"미국에 살면 다 영어 잘하는 거 아냐?"


나도 그랬다. 미국에서 살면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다. 아마 이 글을 읽게 될 미국이나 영어권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렸을 때 와서 정착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영어를 할 줄은 알아도 현지인처럼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경우는 많이 없다. 일부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노력했거나, 한국어를 전혀 쓸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거나(한인이 전혀 없는 곳에 거주, 또는 네이티브 스피커와 결혼을 한다거나 등),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처럼 이른바 '철들고' 미국에 온 사람들은 아마 다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제 곧 미국에 온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 나 또한 누구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상상해 보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미국에서 3년, 영어 얼마나 늘었어?"


사실 내가 사는 환경은 매일매일 영어를 엄청나게 쓰는 환경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 때문에 매일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어서 그들과의 영어는 서로 유창할 필요가 전혀 없다. 심지어 때로는 스페니시로 다짜고짜 말을 거는 손님들도 많아서 스페니시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예전에 멕시코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스페인어를 조금 할 줄 안다.) 다른 일에서는 온라인 비즈니스로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할 일이 없이 이메일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한다. 집에서는 가족들과 한국어를 항상 사용하고, 가끔 가는 한인 마트, 미용실, 한식당에서도 당연히 한국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환경이다 보니, 내가 스스로 엄청 노력하지 않는 한 내 영어가 자연스럽게 늘 이유는 없다. 다만 생존을 위해서 영어가 조금 늘긴 했다. 가장 많이 늘은 부분는 리스닝이다. 바로 관공서에 가거나, 각종 예약, 컴플레인 등을 위한 '고객 센터'와의 전화 통화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객 센터' 통화가 미국 생활에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객 센터 통화 시 주로 만나게 되는 상대방은 인도계, 필리핀계, 힙합 삘이 넘치는 흑인 분들이 많았다. 그들의 독특한 억양을(그들 또한 내 억양이 독특하겠지만) 잘 알아들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설명하려니 자연스럽게 '생존' 영어가 늘게 되었다. 서로 주소정보나 숫자를 알려주기라도 하려면 정말 웃지 못할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첫 1~2년은 전화 통화자체가 곤욕이었는데, 이제는 이래저래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신기하게도 자주 통화를 하다 보니, 그들만의 억양이 귀에 들리는 것이다. 역시 사람은 극한 상황에 쳐해 져야 강해지나 보다.


온라인 MBA를 수강하다 보니 이른바 어나더 레벨의 네이티브 스피커들과 대화할 일이 많았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들과, 또는 '트레이더 조'에 가서 점원과 주고받는 '스몰 토크'가 아니라 미국 현업 10~20년 차 직장인들과 '경영학' 수업 관련하여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그들과의 영어는 쉽지 않다. 100~200 명이 들어와 있는 온라인 라이브 수업에서 교수보다 유창하게 말하는 (그것도 고급 어휘를 써가며) 네이티브 학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소심해져서 웬만하면 나서서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소규모의 조별 과제 미팅 시에는 용기를 내어 내 의견도 말하고, 농담 따먹기도 해보기도 했다.

MBA 라이브 세션 풍경


얼마 전 근 2년간 지속했던 온라인 영어 튜터링(Preply.com)을 잠시 중단하였다. 일상이 바빠지기도 했고, 2년 정도 했으니 오래 했구나 싶기도 했다. 그나마 내가 1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마음껏 영어로 떠들고, 새로운 표현도 배우고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영어도 영어지만, 한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내 마음속 얘기를 터놓고 할 수 있어서, 나에겐 이른바 '힐링 타임' 이기도 했다. 60세의 미국인 아주머니이지만, 현재 멕시코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분이셔서 지금의 나의 상황을 아주 흥미로워하고 마음깊이 이해해 주는 따뜻한 분이었다. 내 얘기를 하염없이 들어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었다. 이민 와서 이래저래 답답하고, 외로웠던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Preply 수업중. 나의 맨토 로라 선생님

앞으로 미국에서 10년 아니, 30년을 살아도 아마 내 영어는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지 싶다. 미국 뉴스도 듣고, 유튜브도 미국 콘텐츠로 많이 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한국말이 더 편하고 잘 들리는 '한국인'인 것이다. 하루에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영어로 된 글, 동영상을 쳐다보기도 싫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영어'를 이해하려면 나도 모르게 더 많은 '뇌'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살겠다고 찾아온 '이방인'이지만, 여전히 영어는 나에게 그런 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에서 말한 표현처럼 '슬픈 외국어'처럼 느껴진다.

로라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준 수료증
시카고 쪽은 이제 벚꽃이 만개하였다.






keyword
이전 01화미국, 어떻게 올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