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버니의 회덮밥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 _ 리틀 포레스트

by 디디온

마포구 성산동 산 밑에 살다 어찌어찌 일산으로 입성을 해서 여러 인연을 만났다. 일산이 좋은 것은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술 마시고 같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 숱한 인연 가운데 Y오라버니와는 각별한 순간들이 있었다.


백석동 초입에 자리한 비잔티움 오피스텔에 살 때 Y오라버니를 처음 만났다. 나는 아직도 오피스텔 1층에 있던 독일식 맥주집에서 Y오라버니를 처음 만나던 날을 기억한다. 별 말이 없었고, 별 표정도 없는 분이었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고 상냥하지 않은 그 무뚝뚝함 뒤에 감춰진 매력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덕적도가 고향인 Y오라버니는 원래 전공이 사진이지만 또 하나의 전공이 있으니 일본의 스시장인 지로 뺨을 칠만한 ‘칼잡이’라는 것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Y오라버니의 아버지는 덕적도에 자리를 잡은 후 인천 연안 일대를 주름잡는 선주이셨다고 한다. 덕분에 생선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데다 일식요리사 자격증을 보유한 스시 전문가이기도 하다.


Y오라버니의 칼잡이 이력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50여 년 전인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시절 동네 친구와 둘이 바닷가에 갔는데 친구가 물속에 놀고 있는 고기를 잡아오겠다며 그 추운 겨울날 옷을 벗고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겨울에 열리는 수영대회도 있고 또 Y오라버니는 거짓말이나 과장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 사실일 것이다. Y오라버니는 혹시 친구가 잘못되면 구하러 가기 위해 밖에서 준비하고 있었지만 친구는 무사히 물고기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고. 두 친구는 잡은 물고기를 집에 가져와 어른들 몰래(!) 회를 쳐서 드셨다고 하니,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또 어디 있을꼬.


회치는 Y오라버니 덕분에 민어를 비롯하여 숭어, 병어, 아지(전갱이), 시메사바, 망둥어 등등의 수많은 물고기들을 술과 함께 위장 속으로 밀어 넣으며 회의 미식세계로 입문하였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처럼 입 안에서 녹던 생참치회를 먹는 호사를 누린 것도 Y오라버니 덕분이었다.


Y오라버니가 어느 날 여러 개의 칼이 든 칼가방과 야채와 횟감이 든 가방을 가지고 집을 방문하였다. 큼직한 가방 안에는 회덮밥용 야채들과 민어와 초장과 장국이 들어 있었다. 그날 난 ‘인생 회덮밥’을 먹었다. 섬세하게 채 썬 야채들 위에 얇게 저민 민어를 눕혀놓고 초장을 끼얹어 장국과 먹었다. 일식집에서 사 먹던 회덮밥과 차원이 다른 것은 셰프의 솜씨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더해 Y오라버니의 ‘마음’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그 마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인생 호사다마라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간관계에서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오해가 겹치고 겹쳐 한동안 Y오라버니와 소원했었다. 걷기 모임 뒤풀이에서 우연히 맥주집에서 어색하게 마주친 날에는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면서도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2년 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갑자기 Y오라버니의 전화를 받았다. 전광석화처럼 달려온 화해의 무드를 타고 우리는 오랜만에 어색한 대화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맥주 마시던 중 갑자기 미안하다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고 감사하여 눈물이 나올 뻔했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도 미안하다고 말씀드렸다. 그 순간 2년 내내 묵은 체증처럼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감정이 모두 깃털처럼 가볍게 휘발되었다. 미움이 물러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기 성찰을 할 줄 아는 사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용기 있는 사람만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이어진 Y오라버니와의 관계는 예전보다 더 깊어지고 돈독해졌다. 안 만나는 동안 미워하며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뒤돌아보니 그 미워하는 마음에는 다시 만나기를 갈구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도 고백해야겠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영화배우 고수가 맡은 믿음직한 대장장이 ‘서날쇠’는 바로 Y오라버니를 모델로 했다는 ‘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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