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20년 넘게 정신분석 상담을 하고 계시는 송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신촌에 있는 상담센터 ‘나무와 새’에서였다. 당시 나는 한 중앙일간지 계열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흔을 좀 넘은 뒤부터 마음에 힘이 부친다는 것을 느꼈다. 첫 번째 사춘기보다 더 지독한 ‘두 번째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는 일은 갑자기 좌표를 잃어버리고 휘청거렸고 마음은 매일매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흔들렸다.
매일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인가 더 이상 살기가 힘들 것 같은 불안과 무력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내가 이야기를 좀 더 길게 끌고 가려고 하자 의사는 그렇게 긴 얘기하고 싶으면 상담센터 나무와 새를 찾아가라고 권했다. 마음에서 폭풍이 일고 벼락이 치고 소낙비가 퍼부었다. 마음에 내리는 빗물 속을 첨벙 대며 나무와 새를 찾아 문을 두드렸다.
한동안 나는 수련과정에 있는 동갑내기 상담가를 만나 커피 한잔 마시며 친구와 이야기하듯 상담을 받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바빠 1주일에 한번 정한 상담 약속을 지키기 힘들었고 상담은 지지부진하던 중 수련상담가는 대학상담소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더 경험이 많은 선생님을 아는데 꼭 그분을 만나보라고 간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송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무와 새는 상담실이 3~4개에 불과한 작은 센터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방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동그란 작은 협탁 하나에 의자 두 개가 전부인 작은 방에서.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나는 왜 냉담하고 차갑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거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후에 정신분석을 공부한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분석가와의 첫 만남에서 가지는 인상은 대부분 내담자의 자기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정신분석, 정확히 말하면 정신분석적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 1주일에 한 번 선생님을 만나 50분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 선생님을 만나면 폭포처럼 끝도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언제 50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끝나고 정한 시간이 지나서도 아쉬워 꼭 몇 마디 더하고서야 회기를 끝냈다.
점점 선생님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점점 마음을 열면서 점점 나는 솔직해졌다. 솔직하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자유롭게 해 주는지 처음으로 마음껏 누리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존재하는 그대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수용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해도 안전하게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축복과도 같았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 설령 그것이 어둡고 불쾌한 것이더라도 감정은 ‘틀린’ 것이 아니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잘못된 감정’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때 깜짝 놀랐다. 나에게 찾아온 변화 때문이다. 내향적인 성격의 나는 예민한 데다 화를 못 내는 성격이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울해지는데, 오랫동안 그런 우울을 옷처럼 입고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늘 안갯속을 걷는 듯이 살아왔는데 어느 날 머릿속에 뿌옇게 떠다니던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비친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에 대해 흥분해서 말하자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깊은 속 이야기를 너무 꽁꽁 속에 묶어두고 발설하지 않아 그것을 끄집어내 말한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라고. 카타르시스 효과인 것이지 근본적인 치유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어쨌거나 난 난생처음 해방감을 만끽하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상큼한 기분을 느끼며 일어나는 것이 신기했고 좋았다.
나를 정신분석이라는 문 앞에 데려간 것은 김형경의 《사람 풍경》이다. 《사람 풍경》을 꼭 읽어야 한다면서 나에게 책을 준 사람은 삼십 대 시절 내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J선배이다. 이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에게는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된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가진 어떤 성격의 부분들이 나의 상처에서 생겨난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 풍경》에 이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정신분석을 받는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으며, ‘마음’을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모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대학 후배를 만나 정신분석 이야기를 하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이다”라는 융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더니, 후배가 즉각 이렇게 응답했다. “맞아요. 생각해 보면 아주 무서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