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통의 근원으로 가서 그것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여수 돌산섬 깊숙이 숨어 있는 비밀의 정원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하고 산다’ ‘꿈을 꾸지 말고 꿈을 산다’라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거의 불가능한 꿈을 실현 중인 최선배가 20여 년 자신의 삶을 바쳐 이룩한 그만의 ‘아쉬람’이다. 약사로 일하다 30대 중반 돌연히 여수 돌산 밑에 5천 평의 땅을 구입한 후 정원을 가꾸고 명상을 하며 자신만의 작은 천국을 그곳에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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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엔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약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_루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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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읍 봉수마을 끝자락 산 입구에 자리한 비밀의 정원을 처음 방문한 것은 15여 년 전 일이다. 정원 안방마님을 잘 아는 지인을 따라 여수로 바람을 쐬러 간 것이 계기였다. 지인의 안방마님이 돌산 밑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다는 사전정보를 입수했으나 그저 시골 별장에 딸린 화단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산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여수여객터미널 근처에 자리한 봉정식당에서 물메기탕을 먹었는데,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바로 그런 맛이었다. 너무 맛있어 샛서방에게만 몰래 준다는 여수 금풍생이도 그날 처음 먹어보았다.
술을 곁들어 저녁을 먹으며 긴 이야기를 나누다 돌산 정원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넘어서였다. 산 아래라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길을 더듬어 도착한 곳에는 능소화가 덩굴로 피어 있는 나무 대문이 있었다. 대문을 열자 돌담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산 아래 밤은 적막하였고 짙은 어둠 속에 잠긴 커다란 나무들의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다.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자 잔디밭이 나오고 그 끝에 작은 집이 있었다. 한밤의 정원은 끝을 모르는 심연처럼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밖을 보니 날이 잔뜩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거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통유리 창으로 정원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밖에서 키 큰 나무들과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초록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큰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거대한 초록 나뭇잎들의 일렁임을 보자 유리창을 경계로 그 안쪽에 서 있는 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 어떤 감정이 밀려들었다. 까닭 모를 슬픔과 깊은 어둠, 희미한 평온함이. 여기 이렇게 선 채로 이 세상을 넘어가도 좋을 것 같았다.
오후에 바람이 잠잠해지고 해가 비추자 정원을 둘러보았다. 수선화를 비롯하여 수국, 백일초, 금잔화, 패랭이꽃, 봉선화, 나팔꽃, 제라늄 등등이 울창한 나무들과 어우러진 광경은 ‘여기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시간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정원의 끝 돌산 바로 밑에는 넓은 차밭이 있었다.
새 지저귀는 소리, 신우대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봉수골을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이따금 뒷산에서 고라니 울음소리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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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에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마지막 날 여수에 간 적이 있었다. KTX를 타고 여수에 도착하니 최선배가 차를 갖고 마중 나와 있었다. 정원 별장에 도착하자 선배가 초대한 지인 들이 마지막 날의 세리머니를 위해 모여 있었고, 맛있는 술과 음식도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는 각자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은 언제나 힘든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가 되어준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며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 우리는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했다. 돌산에 올라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밖은 짙은 어둠이었고 추웠다. 작은 손전등으로 좁은 길을 비추며 걸어갔다. 풀숲과 작은 개울과 이름 모를 산소를 지나 조금씩 가팔라지는 돌산 허리께에 이르자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희뿌옇게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산 꼭대기에 이르자 힘들게 걸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힘이 솟았다. 향일암 너머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을 보며 우리는 새해인사를 나누었다.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길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지난해의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새가 되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별장에는 새해 떡국이 준비되어 있었다. 떡국을 먹고 우리는 또 한 해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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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서 살아야 했던 타샤 튜더. 《타샤의 정원》에 나온 연보를 보면 아버지 친구 집은 자유로운 가풍이었다는 말과 더불어 15세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살기 시작했다고 쓰여 있다. 그녀 삶이 그렇게 순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녀가 사람이 없는 적막한 미국 버몬트 주 산골에서 꽃과 식물로 가득한 정원 가꾸기에 일생을 바친 것은 일종의 자기 치유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인간과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받은 상처들은 인간의 의지를 벗어나 그저 존재하는 자연의 품에서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타샤 튜더는 보여준 것이 아닐까. 자연의 품에 ‘작은 천국’이 있음을 그리고 평화로운 ‘내면’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이자 ‘행복’이라는 것을 타샤 튜더의 삶은 보여주고 있다.
여수 돌산에 숨어 있는 비밀의 정원에서 한국의 타샤 튜더는 20여 년째 정원을 가꾸면서 깨달음을 넓혀가고 있다. 그 정원이 그토록 특별한 것은 그곳에 가면 마음의 평안이 어떠한 것인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주는 위안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