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이

글이란 꿈을 만질 수 있는 상태로 바꾸는 것 _ 페르난두 페소아

by 디디온

나에게는 ‘미선이’가 둘 있다. 하나는 루시드 폴이 만든 인디밴드 ‘미선이’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랜 친구 미선이다. 미선이와 나는 대학 1학년 때 만났다. 그 시절 미선이는 볼이 통통했고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딱 보면 신입생 티가 폴폴 나는 학생이었다. 나는 미선이의 첫사랑을 알고 그 첫사랑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도 안다. 미선이가 연애 초기 그 남자와 데이트를 할 때 나는 모르는 척 그들 사이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시곤 했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이후 미선이가 다이어트를 하고 이쁘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기 시작한 것도 기억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뒤바꿀 만큼 힘이 셌다.


‘미선이’란 인디밴드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특별히 노래를 찾아 들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루시드 폴이 미선이 밴드 멤버였던 사실도 몰랐다. 루시드 폴을 알게 된 것도 루시드 폴이 마종기와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을 출간한 것도 미선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시절 광화문에서 만난 미선이와 오붓하게 걸은 적이 있는데 그때 미선이가 루시드 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밴드 이름을 ‘미선이’라고 한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밴드에서 드럼 치던 멤버가 그냥 지은 것이고, 루시드 폴이란 이름도 라디오 출연 전 대기실에서 순간 생각난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인디밴드 ‘미선이’란 이름은 평범하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는 매우 개성이 넘치고 특별하게 좋다. 내 친구 미선이가 그렇듯이.


인디밴드 미선이의 앨범은 ‘Drifting’ 단 한 장이다. 데뷔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Drifting’에는 ‘송시’ ‘치질’ ‘두 번째 세상’ 등 매우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노래들이 담겨 있다. 한국대중음악명반 100의 하나로 꼽히며, 90년대 베스트앨범에도 꼽히는 앨범이다.


인디밴드 미선이를 이끈 루시드 폴은 ‘꿈처럼 음악만 아는’ 가수이다. 그런 그가 마종기의 시를 그렇게 깊게 읽고 좋아한 것은 과학도로서 음악을 하는 자신과 의사로 일하며 시를 쓰는 마종기와의 사이에 일련의 공통분모가 있어서가 아닐까. 마종기의 모든 시집을 읽은 루시드 폴은 시인의 시로 인해 그의 음악이 더 풍성해졌다고 말한다.


루시드 폴과 마종기 시인이 메일로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펴낸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는 예술을 하는 동료로서의 응원과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듬뿍 배어 있다. 루시드 폴의 팬들은 마종기의 시집이 출간되면 루시드 폴에게 시집을 선물하고, 루시드 폴 음반이 나오면 마종기 시인에게 음반을 선물한다고 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에게도 그 사랑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즐거웠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루시드 폴과 마종기 시인의 교우를 보면서 정여울과 황광수의 특별한 우정이 떠올랐다. 30여 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문학이라는 공통분모에서 시작하여 지적세계와 예술세계에 대한 교감으로 우정을 만들어갔던 두 사람도 함께 책을 만들었다. 미선이가 은퇴를 하면 우리도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하나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미선이는 감정의 균형을 잡을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어서 서로의 다른 점을 조율하면서 즐겁게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루시드 폴을 알기 전에는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마종기는 그의 음악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바흐처럼 나를 맑게 정돈시키는 힘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나를 압도하고 소름 끼치게 진리를 설파하는 것도 아니고, 모차르트처럼 천상의 황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이 음악이 외롭고 고달픈 또래의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오늘은 미선이 생일이다. 미선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미선이를 생각하면서 오늘은 미선이가 좋아하는 루시드 폴의 ‘평범한 사람’을 들어볼 생각이다.


Happy Birthday to 미선이!!



***


바람의 말 _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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