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화사랑에 처음 간 것은 대학 2학년 봄 무렵이었을 것이다. 화창한 봄날 갑자기 번개처럼 몇몇 선배 틈에 끼어 수업을 땡땡이치고 신촌역에서 기차를 탔다. 백마역에서 내리자 사방이 허허벌판이었는데 한참을 걸어가자 카페촌이 나오고 층고가 높고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 화사랑이 있었다. 그곳에서 파전에 동동주를 먹고 훤한 대낮에 취한 얼굴로 달고나를 사 먹고 뽑기를 하고 철없는 애들처럼 놀았다. 사랑을 잃고 쓸쓸하고 씁쓸한 술을 마신 후 화사랑 자갈밭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던 날도 있었다.
일산에 살면서 가끔 청국장 맛있기로 소문난 양수면옥에 가기 위해 애니골을 들렀는데 애니골 입구에 화사랑이 있었다. 이젠 주변에 너무나 많은 건물이 들어서 북적이고 있어 그 옛날 허허벌판에 반가운 등대처럼 있던 모습은 아니지만, 화사랑은 여전히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화사랑에 마지막으로 간 것은 6~7년 전 대학 동아리 모임 때였다. 미국에 사는 후배 부부가 잠깐 국내로 들어왔다 출국을 앞두고 송별회를 겸해 20년 만에 선배 후배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정계에 몸담은 선배를 비롯하여 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선배 등 한 20여 명이 모이니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임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우리 동아리가 교통이 편한 서울 시내가 아니라 굳이 일산 화사랑에서 모임을 가진 것은 화사랑 주인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이제는 정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선배가 돈이 궁했던 이십 대 시절 화사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오랜 인연의 첫 시작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우리는 시화전을 끝내고 뒤풀이를 하러 화사랑에 가기도 했고, 무언가 마음이 허기질 때면 여행 가듯 화사랑을 방문하여 술을 마시며 젊은 날의 결핍과 불안과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화사랑 주인장은 수녀님 같은 분위기다. 한때 수녀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화사랑 주인장은 화사랑에 자주 들렀던 기형도 시인과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었고, 후배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도 한 곡 불렀다. 기형도뿐만이 아니라 80년대 화사랑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자리가 화사랑의 마지막 장면, 화사랑 주인을 보는 마지막 자리가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몇 년 후 무덥던 7월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부고가 카톡 메시지로 들어왔다. 화사랑 주인장의 부고 소식이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일산 동국대병원 장례식장에 갔다. 장례식장에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사장님, 가끔 일간지에 글을 기고하는 문학평론가를 비롯하여 80년대 화사랑에 드나들던 손님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 세상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으로 스스로 떠나버리다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인자한 맏언니 같고 평온한 수녀님 같았던 그분의 얼굴을 떠올리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죽음이었다. 곰처럼 큰 몸집에 하얀 얼굴의 남자 후배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어 이모처럼 따랐다면서 울었다. 장례가 끝난 뒤 단톡방에서 고인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던 가운데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들, 괴로운 일이 있으면 얘기하고 서로 나누고 위로해 주어요. 절대 이렇게 가기 없기로 해요. 우리는 꼭 자연사(?)하기로 해요ㅠㅠ”
그래, 사랑스러운 후배야, 우리는 꼭 자연사하기로 약속하자.
주인을 잃은 화사랑은 이제 빛을 잃었다. 2년 전 몇몇 후배와 다시 찾아간 화사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만 그 시절 화사랑의 추억들은 아련한 흑백사진처럼 가슴에 남아 있지만, 주인 잃은 화사랑은 그 옛날 우리가 알던 화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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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 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_〈차라투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