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걸어간다

정현종의 시를 읽다

by 디디온

대학시절 문과대학 주변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정현종 시인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정현종 시인을 보면 꼭 “시인이 걸어간다”라고 말을 했다. ‘시인이 걸어간다’는 왠지 시의 한 구절 같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시를 읽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특이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은 황지우를 비롯하여 이성복, 황동규, 정현종, 최승자 등의 시인이 쓴 어려운 시들을 읽었다. 그 어려운 시들을 그저 ‘읽기만’ 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모르면서도 그냥 읽었던 시간이 쌓이니 시를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다. 매일 밥을 먹어야 살 듯 우리는 매일 시를 읽어야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시를 언제부터 읽었던가 생각해 보니 중학교 때부터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란 시를 처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고, 신경림의 ‘갈대’란 시를 읽으며 절절하게 공감(어린 나이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서른이 넘어 ‘미라보 다리’라는 낭만적 시를 쓰던 아폴리네르가 포르노 소설을 쓴 것을 알고는 많이 놀랐던 생각도 난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갈대’의 한 구절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었다. 신경림 시인을 이야기하니 얼마 전 이웃에 사는 왕언니에게 들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언니 결혼식의 주례를 맡은 분이 신경림 시인이었는데, 술을 좋아하는 시인이 결혼식 전날 과음을 하는 바람에 그만 결혼식이 시작되었는데도 주례를 맡은 시인이 오지 않아 애를 태웠다는 이야기였다.


이십 대에는 늘 술을 마시고 늘 시를 읽었다. 서른부터 20여 년은 시를 읽지 않다가 최근 다시 시를 읽는다. 서효인도 읽고, 황병승도 읽었다. 황병승의 시를 읽으면서는 황지우가 떠올랐고 깜짝 놀랐다. 읽을수록 시는 매력적인데 매력적인 만큼 시는 어렵기도 하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후배가 선물한 황동규의 시집《오늘 하루만이라도》를 읽다가 ‘일곱 개의 단편斷片’이라는 시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시 가운데 이 구절에 홀딱 반했다.


연구실 벽에 걸린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가리키며

비평가 오생근이 말했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내가 덧붙인다.

‘속이 안보입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두고 두 고수가 주고받은 대화는 로스코의 작품을 깊이 이해한 것을 시적으로 더없이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 구절을 읽은 다음 다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니 두 고수의 경지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가끔 시를 읽으면서 시를 읽는 게 무슨 소용 있을까 싶기도 하다가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는 시를 만나면 또 나는 무장해제되어 버린다. 세상의 기준으로 ‘쓸모없는 것’들이 진짜 ‘쓸모없는’ 것들일까. 세상의 쓸모없음은 누가 정하는가. 쓸모없는 것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서 쓸모 있게 쓰이는 것을 우리가 몰라서 하는 말 아닐까. 정현종의 시를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어디 우산 놓고 오듯 | 정현종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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