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에서 듣는 음악

보리스 비앙의〈Le déserteur〉

by 디디온

일산 정발고등학교 뒤편에 자리 잡은 윤광준의 작업실 B1에서 몇몇이 모이는 날에는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는다. 작업실 이름 B1에 무슨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작업실이 지하 1층에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B1에서 아는 얼굴들이 집합하는 날에는 술을 마시며, 주주클럽의 ‘나는 나’를 비롯하여 어어부밴드의 1집 ‘손익분기점’을 듣다가 판소리 ‘맹꽁이 타령’도 듣고, 키스 자렛을 거쳐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까지 온갖 노래를 듣다가 결국에는 술 취한 김에 남인수와 황금심 등 옛날 노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오디오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황홀’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온갖 음악을 듣는 음악애호가이자 오디오전문가이자 뛰어난 DJ가 고른 노래를 탄노이 오디오시스템으로 듣는 시간은 황홀하고 황공하고 매혹적이다.


보리스 비앙의〈Le déserteur〉도 윤광준의 작업실에서 처음 들었다. 〈Le déserteur〉 LP판을 꺼낸 윤광준은 마치 ‘너희들 이런 노래 모르지?’ 하는 표정으로 술 마시고 시시덕거리기에 열중하던 우리를 보았다. 윤광준이 처음 이 곡을 들은 것은 오디오와 클래식 음악과 커피에 ‘미쳐있는’ 친구 김갑수의 작업실에서였다고 한다. 처음 이 곡을 듣고 받은 신선한 충격에 관해 한참 설명한 뒤 노래를 들려주었다.


반전가로 유명한 ‘Le déserteur’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보리스 비앙이 시로 먼저 발표한 뒤 만든 노래로, ‘Le déserteur’는 ‘탈주병’이란 뜻이다. 1954년 5월 7일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가 결정적인 패배를 한 날 처음으로 소개된 이 노래는 그 후 프랑스 정부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1966년 미국의 포크그룹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가 불러 세계적인 반전가요로 유명해졌으며,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존 바에즈가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노래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탈영병의 편지 형식으로, 그는 자신이 무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탈영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쟁터로 나가라는 징집장을 받았는데 자신은 불쌍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므로 갈 수 없어 차라리 탈영병이 되겠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2020년 3월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내는 정부 비판 글에서 이 노래의 첫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보리스 비앙은 한때 재즈클럽 ‘르 타브’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기도 했고, 재즈 콘서트를 기획하여 듀크 엘렝턴,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미국 재즈 뮤지션들을 프랑스로 초대하기도 했다. 소설가로도 활동했던 보리스 비앙의 작품은《세월의 거품》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소설가, 작사가, 영화배우, 재즈 음악가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시몬느 보부아르와 샤르트르와 교유하는 등 프랑스 문화계에서 주목받던 보리스 비앙은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시사회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이브 몽탕, 나나 무스꾸리, 쥘리에트 그레코 등이 보리스 비앙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


〈Le déserteur〉


미스터 프레지던트 / 편지 한 자 적습니다 / 시간이 있다면 읽어보시겠죠

수요일 밤까지 / 전쟁터로 가라는 / 징집영장을 받았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 저는 싫어요 / 가련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 제가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 화나게 할 생각은 없지만 / 할 말은 해야겠어요 / 저는 결심했어요 / 탈영할 거예요


태어나 아버지의 죽음을 보았어요 / 형제들이 전쟁터로 가는 것을 / 자식들의 울부짖음을 들었어요 / 고통스러워하던 어머니는 / 지금 무덤에 있으니 / 이젠 폭탄도 안 무섭고 / 구더기도 비웃겠죠 / 내가 전쟁포로였을 때 / 아내를 빼앗기고/ 영혼을 도둑맞고 / 아름다운 과거도 사라졌어요 / 내일 아침 일찍 / 문을 닫고 / 잃어버린 세월과 이별하고 / 길을 떠날 거예요


브르타뉴에서 프로방스까지 / 프랑스 곳곳에서 / 구걸하며 살아야겠죠 / 사람들에게 외칠 거예요 / 전쟁을 거부하라고 / 전쟁터에 가면 안 된다고 / 징집을 거부하라고 / 피를 흘려야 한다면 / 당신 피를 바치세요 / 당신은 전쟁을 전도하는 분이잖아요 /

미스터 프레지던트 / 나를 쫓아오는 경찰들에게 말하세요 / 난 총을 들지 않을 테니 / 나를 쏴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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