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채워야 비울 수 있다
영국에는 영국 남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건너온 다양한 피부톤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남자들로 북적인다. 연애에 대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곳이어서 연애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연애의 천국은 곧 연애의 지옥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만큼 헤어지는 일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영국에 있던 시절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를 카페나 길거리에서 많이 들었다. 서머타임이 끝난 11월이면 오후 4시부터 어둑해지면서 4시 반이 되면 캄캄한 밤이 되어버리는 낯선 나라에서 들리던 노라 존스의 노래는 안개처럼 우수 어린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노라 존스가 인도의 전통악기인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상카르의 딸이라는 사실은 훗날 알게 되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노라 존스가 라비 상카르가 바람을 피워 태어난 소위 혼외자식이라는 사실이다. 라비 상카르는 비틀스 음악에 영향을 끼쳤으며 비틀스 멤버 조리 해리슨에게는 시타르 연주를 가르쳐주고 함께 공연도 했다. 노라 존스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빛과 그림자가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의 로맨틱한 순간들이 있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법한 순간들이. 그 순간들을 충분히 만끽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충족의 시간이 있었기에 더 이상 연애의 환상을 더듬거리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현종 시인의 ‘슬픔’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덤덤하거나 짜릿한 표정들을 보았고 / 막히거나 뚫린 몸짓들을 보았으며 / 탕진만이 쉬게 할 욕망들도 보았다”
욕망은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환상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욕망의 싹을 틔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실과 동떨어진 왜곡된 환상이 생겨난다. 환상을 깨트릴 수 있는 것은 그 환상의 실체를 만나는 것이다. 실체를 만나지 않는 한 환상은 떠나가지 않는다.
얼마 전 동네 맥주집에서 오라버니들과 술을 마시던 중 한 오라버니가 자신은 모든 것을 다 해보아서 더 궁금한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아쉽지 않고 사는 것에 미련이 없다고 쿨하게 이야기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오라버니는 세상 안 다녀본 곳이 없고, 세상 안 해본 연애가 없으며, 세상 안 해본 오디오가 없다. 충족된 욕망은 더 이상 우리를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 충족된 욕망은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준다. 오라버니의 자유로운 인생의 비밀은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채워주는 것에 있었다.
런던 퍼트니 한 펍에 혼자 술을 마시러 온 동양 여자의 술잔이 비자 젠틀하게 다시 채워준 남자의 손을 잡고 걸었던 것은 로맨틱한 연애에 대한 나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숨을 쉬는 런던의 거리는 함께 잡은 손이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해 주는 솔직함도, 거절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도 영국 남자들의 매력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sweet’ ‘gorgeous’ ‘pretty’라는 말을 듣는 순간은 내가 정말로 예뻐지는 것 같은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소설가 피에르 로티의 애절한 사랑이 떠오른다. 프랑스 해군장교인 피에르 로티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지야데’란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아지야데는 결혼을 한 여자였지만 둘은 이스탄불의 한 언덕에서 몰래 만나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나 해외근무 기간이 끝나 피에르 로티가 떠나고 아지야데는 그녀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된 가족에 의해 명예살인을 당했다고 하니 사랑의 대가가 너무 가혹한 셈이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이스탄불을 찾은 피에르 로티는 아지야데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녀를 그리워하며 둘이 사랑을 나누던 언덕 카페에서 소설을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아지야데’로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그 후 이 언덕은 ‘피에르 로티 언덕’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도 이스탄불에 올 때면 피에르 로티 언덕에 있는 찻집에서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젊은 시절엔 사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다. 사랑을 갈구하는 내면의 결핍에 대한 성찰 없이 뛰어든 사랑은 불구덩이나 다름없었다. 불에 덴 혹독한 지난 상처들이 아직도 마음속에는 분화구처럼 남아 있다. 이제 나는 사랑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상대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나의 결핍과 대면하는 일이고 관계 속에서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
당신의 손을 잡는 순간
시간은 체온 같았다
오른손과 왼손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놓았다
가장 잘한 일과
가장 후회되는 일은
다르지 않았다
_ 장승리 <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