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
커피 열풍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도 한참 지났다. 나는 참으로 커피 맛에는 무심한 사람인데 본의 아니게 주위에 커피를 깊게 파고드는 고수들이 많아 귀동냥 눈동냥하면서 어깨 너머 알게 된 것들이 쏠쏠하게 있다. 강하게 로스팅한 만델링의 보디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융 드리퍼를 사용해야 한다던가, 추출 시간이 30여 초밖에 안 되는 에스프레소는 커피콩을 가늘게 갈아야 하고, 드립커피는 깨알정도 굵기로 갈아 추출해야 맛있는 커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등을 그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고수가 나에게 살짝 귀띔해 준 얘기가 있다. 세상의 온갖 커피를 찾아 헤맨 끝에 도달한 결론이 ‘드립커피’라고. 아무튼 그 드립커피를 고수하시는 커피고수가 요즘 스페셜티 커피에 탐닉 중이신데 그분으로부터 처음 ‘게이샤’란 커피를 알게 되었다. 게이샤라니! 게이샤라니! 커피 이름이 게이샤라니. 이렇게 섹시한 커피 이름이 어디에 있을까.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장쯔이가 직접 커피를 내려주기라도 하는 건가.
한번 맛보지도 못하고 이름만 들은 커피 ‘게이샤’는 그 이름의 강렬함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 기억 속의 게이샤를 처음 만난 것은 우리나라 원두커피의 열풍을 이끌어가고 있는 강릉 테라로사에서였다. 일요일 저녁 늦게 찾아간 그곳에서 호기심과 기대에 찬 마음으로 게이샤를 시켰다. 직원이 쟁반에 올려 가져온 게이샤는 유럽풍 고전적 찻잔에 고고한 여인의 눈물처럼 우아하게 담겨 있었다. 마치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의 살짝 비치는 목덜미처럼 게이샤는 그렇게 잔에 안겨 있었다.
처음으로 마셔본 게이샤는 너무 낯선 맛이어서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내 혀는 아직 고고한 게이샤를 탐하기에는 어리숙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내 혀는 아직 최고의 스페셜티 커피를 음미하며 즐길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게이샤를 다시 만난 것은 올해 초 정발산 너머에 자리 잡은 커피 고수의 작업실에서였다. 작업실은 늘 우리들의 주점이기도 하고 수다방이기도 하고 노래방이기도 하다. 과메기와 홍어무침에 마침 후배가 선물로 보내준 ‘배꽃담은 연’이란 막걸리를 반주로 마시며 가진 신년모임 자리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게이샤’를 사랑하는 고수가 로스팅 실로 들어가더니 아끼는 파나마 게이샤를 로스팅하기 시작했다.
기계가 쉭쉭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구수한 커피 볶는 냄새가 퍼지더니 따끈따끈한 갈색의 커피콩이 탄생하였다. 커피콩을 받아 든 전문 바리스타 고수가 콩을 커피머신에 분쇄한 다음 내린 커피를 잔에 담아 주었다.
방금 내린 게이샤의 맛은 놀라웠다. 입 안에 머금은 커피는 지금까지 마셔본 어떤 커피보다 생기 있고 부드러워, 마치 입 안에서 작은 음악이 흐르는 것 같았다. 신선한 커피콩을 갓 볶아 바로 내린 커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신맛과 쓴맛의 조화는 하나의 작품처럼 혀를 감싸주었다. 게이샤 커피를 맛보고 “커피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는 찬사를 보낸 사람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이샤 커피를 마시며 게이샤가 되기 위해 수련 중인 마이코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이 떠올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이 드라마는 드라마 계의 ‘커피 게이샤’ 일지도 모르겠다.
고수는 무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곳곳에 고수는 숨어 있는데 아는 사람만 아는 일산의 커피 고수들 덕분에 커피 맛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의 혀가 황홀한 맛을 경험하였다.
인생의 쓴맛도 있고, 술의 쓴맛도 있고, 커피의 쓴맛도 있다.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되면 술이 더 이상 쓰지 않다.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순간 술은 달아진다. 로스팅을 강하게 할수록 커지는 커피의 쓴맛은 인생의 쓴맛을 술로 다스리지 않아도 될 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격조 있는 쓴맛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