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있는 지식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한동안 일본어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따로 선생님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다섯 명의 회원이 매주 만나 일본 칼럼 하나씩을 독해하며 함께 공부했다. 당시 ‘수유+너머’ 프로그램은 하나의 테마를 정하고 담당 강사가 강의를 진행하는 형식이었는데, 일본어독해모임은 대학 동아리 세미나처럼 운영되었다. 일본어를 오랫동안 공부하신 두 분이 세 명의 초보자를 친절하게 이끌어주었다. 독해를 잘 못한다고 해서, 독해가 틀렸다고 해서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잘 가르쳐주면서 다독여주어 초보자인 내가 일본어에 흥미를 가지도록 도와주셨다. 일본어뿐만 아니라 일본 역사와 문화, 예술, 음식 등 다방면에서 일본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적 자산을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1년 넘게 행복한 공부를 하자 일본어가 재미있어졌고 독해 실력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느껴져 뿌듯했다. 공부를 하면서 친해진 우리는 함께 교토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유럽의 고즈넉한 도시를 닮은 교토 시내를 걸어 다니고 교토대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도시샤 대학에 있는 윤동주 시비도 보았고, 정지용의 ‘압천(鴨川)’이란 시의 모티브가 된 교토의 하천 카모가와에 가서 돌 징검다리를 건너도 보았다. 금각사와 아라시야마 대나무숲도 그때 가보았다. 우즈마사 미소라 히바리 박물관에 가보지 못한 것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교토여행을 함께 다녀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일본어공부모임의 한 분이 이렇게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일본책을 함께 번역하여 책을 출판하면 훨씬 의미 있는 모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했다. 마침 ‘コ-ヒ-こつの科學’이라는 일본책이 있어 저작권을 알아봤더니 한국출판저작권이 살아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책을 공동으로 번역하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폭탄처럼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그때 놀랐던 것은 왜 똑같은 것을 보았는데 같이 생각할 수 없고 같이 느끼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때 참으로 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아직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온전히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보는 시각이 다르고 기억하는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좀처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힘든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것을.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게 아니라 보여야 비로소 보는 것이다
그 무렵 만난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강운구 사진작가의《시간의 빛》에 들어 있는 김훈의 추천사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내가 생각한 바로 그것,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그것을 바로 이 문장이 너무나 정확하게 짚고 있었으며 ‘이것 이상’이 가능하지 않을 만큼 멋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 뒤 나는 이 문장을 카톡 프로필 문구로 걸어두고 있다. ‘コ-ヒ-こつの科學’은 한참 후 ‘수유+너머’ 일본어공부팀이 아니라 전문번역가에 의해 책으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