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온 Aug 12. 2024

고통을 건너가는 힘

인생의 늪을 살아 건너다,《마운틴 퀸 : 락파 셰르파》

“에베레스트 산을 보면 상처가 생각납니다. 산은 나를 산처럼 강하게 만들어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마운틴 퀸 : 락파 셰르파》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10번이나 오른 락파 셰르파의 인생을 담고 있다. 에베레스트 산을 처음 오른 네팔 여성 락파 셰르파는 두 딸을 위해 10번째 에베레스트 산을 오른다. 두 딸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조금 바꾸기 위해서이다. 에베레스트 1번 캠프인 해발 7,924미터에 있는 데스 존에서 락파 셰르파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해야 용감해지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두 딸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딸들을 위해 남편의 폭력을 견디고, 폭력을 피해 쉼터에서 두 딸과 지내며 남편으로부터 독립한 락파 셰르파는 감옥 같은 푸드 코트에서 일을 하며 딸들을 홀로 키워낸다. 배우지 못해 영어를 읽지 못하는 문맹을 딸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일을 하여 두 딸을 교육시킨다.      


락파 셰르파는 네팔 소수민족으로 산에서 사는 셰르파 부족 일원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야크를 길러 생활하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성이 셰르파이고, 이름은 태어난 날에 따라 정해진다. 화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이름이 ‘밍마’, 수요일에 태어나면 ‘락파’이다. 그러니까 이름에서 ‘락파’가 태어난 날은 수요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천부적으로 남자를 능가하는 강한 체력을 지녔다. 바위를 집어 올려 공처럼 던질 만큼 강한 힘을 가진 그녀는 머리를 남자처럼 자르고 에베레스트 등반을 돕는 짐꾼이 되고 이후 키친보이로 일을 하며 에베레스트 등반에 필요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산에 오를 때 그녀는 진정한 자기로 행복을 느끼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 산에서 그녀는 행복을 찾았다. 산이 있어 고통의 세월을 견딜 힘을 얻고 위로받았다. 산이 말해줄 때까지 그녀는 기다린다. 산이 안 된다고 하면 그녀는 기다리고, 산이 허락하면 그때 산을 오른다. 

     

“10번째 등정에 성공했어요. 여기에 제 어두운 과거를 전부 두고 가려고요.”   

  

네팔 전통의상을 입고 드라마틱 그 자체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락파 셰르파의 얼굴에는 고통이 할퀴고 간 흔적이 없다. 아직도 그녀는 고통 따위는 가볍게 메다꽂을 수 있는 힘과 에너지 그리고 딸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다.      


그녀의 출신을 무시하던 첫 번째 남편은 아들을 두고 무책임하게 떠났고, 산을 오르며 사랑을 키운 두 번째 남편 또한 두 딸을 얻은 뒤에는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머나먼 미국에서 남편의 무시와 폭력을 견디는 힘은 딸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오직 딸들에 대한 사랑과 오직 산이 건네는 치유에 기대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낸 락파 셰르파의 강인함은 경탄이 나올 정도이다. 열 번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그녀의 모습은 검게 그을린 피부, 아무렇게나 흩어진 머리칼에 누더기 된 등산복 차림이지만, 온갖 고난을 이기고 세상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모습에는 산이 선사한 삶의 생기와 자신감, 그리고 평화가 깃들어 있다. 산이 있어 행복하고, 산이 자신을 지켜주는 어머니라는 락파 셰르파. 그녀의 산에는, 오로지 세속의 돈과 명예를 목적으로 호화스런 장비와 수십 명의 호위무사를 거느리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세속의 찌든 욕망 대신 산이 주는 삶의 날 것을 그대로 만나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이전 05화 영화로 보는 시(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