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해피 투게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는 이과수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로 꼽힌다. 무려 275개의 폭포가 있다. 그 가운데 12개의 폭포가 동시에 떨어져 내리는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는 폭포가 가장 높고 유명하다. 영화 ‘해피투게더’ 초반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과수 폭포의 모습은 그것이 상징하는 ‘알 수 없는 심연’의 모습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심연이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심연이기도 하다.
영화 〈해피 투게더〉는 보영과 아휘 두 남남커플의 사랑을 담은 퀴어영화이지만, 퀴어영화로 한정 지을 필요는 없다. 애증과 일상의 지리멸렬함으로 이루어진 그럼에도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관계의 본질은 남남 커플이나 남녀 커플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보영은 왜 그렇게 허약하고 이기적인가. 그럼에도 아휘는 왜 보영을 사랑하고 동시에 진저리 치면서도 그가 떠날까 불안해하는가. 마침내 격렬하고 지리멸렬하면서도 끝날 것 같지 않던 둘의 관계가 끝장나자 둘은 깊이 상처받는다.
“난 늘 그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고독해지면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는 아휘의 이 말은 인간이 타인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리켜준다.
결별 후 아르헨티나를 떠나기 전 아휘는 보영과 함께 가기로 했던 이과수 폭포에 혼자 간다. 깊은 슬픔을 느끼는 보영. 죽음 앞에서 그리고 외로움 앞에서 인간은 혼자이다. 이 깊은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외로움은 인간의 운명이고, 그것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타인을 찾아 사랑하지만, 결국 사랑은 다시 자신의 외로움을 마주 보게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방법은 외로움을 똑바로 직면한 상태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왕가위는 왕가위다. 영화의 영상은 마치 외로움이 물든 시(詩) 같은 장면들이 매혹적이지만, 인간 삶의 본질을 이루는 것을 꿰뚫는 시각 또한 깊다. 이 영화를 20대 시절 보고는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최근 다시 보면서 정말 좋은 영화라고 느꼈다. 그 세월을 통과하며 내가 경험한 것들이 이제 이 영화를 진짜 만날 수 있게 데려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