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얼마 전 근처에 사는 언니와 함께 산책을 했다. 일산의 아파트 사이사이에는 나무가 무성한 길이 있어 둘이서 정담(情談)을 나누며 걷기에 좋다. 그날 언니가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꼭 보라며 추천해주었다.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조디 포스터와 아네트 버닝이 주연한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64세의 나이에 자신의 꿈을 실현한 마라톤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자서전 《Find a Way》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중간중간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의 토대가 된 나이애드의 쿠바-플로리다 마라톤 수영 장면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영화이면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에는 여러 가지 매력 포인트가 있는데 첫 번째 매력 포인트로 조디 포스터와 아네트 버닝의 연기를 꼽고 싶다. 나이 들어도 여배우는 여배우일 터인데, 아름답고 예쁘고 우아한 모습 대신 연기하는 캐릭터를 가장 적절히 보여주기 위해 여배우의 아름다움을 포기한 대 여배우들의 연기는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숨길 수 없는 주름이 그대로 드러나고,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지만 그렇기에 조디 포스터와 아네트 베닝의 연기는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보여주며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30년 지기인 두 친구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잘 알기에 배려해주고, 친구의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옆에서 힘을 보태는 모습을 보면 부러워지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 보니 같은 친구가 있다면 어떤 파도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영화 초반 직선적이고 솔직한 아네트 베닝의 대사는 이제 인생의 ‘끝의 시작’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복잡하고 험난한 인생 한가운데 막 발을 들여놓은 젊은 사람들에는 알 수 없는 ‘용기’를 준다. 28세에도 ‘쿠바-플로리다’ 마라톤 수영에 실패했는데 60 넘어 성공할 것 같냐는 보니 말에 나이애드는 이렇게 받아친다.
“죽음으로 가는 일방 도로에 있다 해서 평범함에 굴복할 필요는 없잖아. 60살 되면 세상이 퇴물로 본다니까.”
“세상이 정해주는 한계 따위 안 믿어.”
나이애드는 네 번이나 파도를 넘지 못하고 실패했지만 다섯 번째 파도를 넘어 자신의 꿈을 이룬다. “마라톤 수영의 핵심은 ‘가장 오랜 시간, 가장 큰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수영 분야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이애드 인생에는 ‘쿠바-플로리다 마라톤 수영 완주’라는 평생의 꿈을 가로막은 네 번의 파도 외에도 그녀 인생을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었던 거대한 두 번의 파도가 더 있었다. 14세 때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던 수영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과 의붓아버지에 대한 기억.
누가 그랬던가, 파도를 멈출 수는 없어도 파도를 잘 타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고.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우리의 꿈을, 우리의 인생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파도를 넘어 고통스럽지만 당당하게 자기 삶을 지켜낸 인생 스토리다. 곁에서 실질적으로, 심정적으로 응원해준 친구 ‘보니’가 없었다면 그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지 않았을까. 목표지점을 얼마 안 두고 탈진하여 포기하겠다는 나이애드에게 힘을 주기 위해 직접 깊은 바다로 뛰어들어 함께 수영하면서 용기를 북돋우는 장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
그날 산책 뒤 우리는 근처에 사는 젠틀맨을 불러 동네 맥주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셨다. 언니와 사진쟁이 오라버니는 40년 지기로, 나이애드와 보니 같은 친구 사이다.
“그것만 한 기분도 없었어요. 바다 한복판에서 서로 격려하고 당신은 힘차게 수영하고 돌고래들이 따라오고 나와 보니와 팀원들은 한마음이었어요. 우린 할 수 있어. 해낼 수 있어. 그 무모한 도전을 모두 믿었죠. 그때 참 좋았죠.”_ 나애애드의 마라톤 수영을 도운 항해사의 말
올 한 해 나를 무너뜨리려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헐떡거릴 때마다, ‘폭탄이 떨어질 때 그와 동시에 길이 열린다’고 한 팃낙한의 말을 떠올렸다. 영화 속에서 거듭 나오는 메리 올리버의 책 구절 “결국엔 모든 것이 이르게 죽지 않는가. 격정적이고 귀중한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쓸 생각인가”는 이 영화가 보는 사람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단 하나의 말’ 인지도 모른다.
“인생에선 네게만 의지해야 돼. 위대해지고 싶다면 너를 믿어. 너의 의지와 정신이 널 이끌어 줄 거야. 다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