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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an 27. 2024

세상이 정한 한계 따위 믿지 않는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얼마전 근처에 사는 언니와 함께 산책을 했다. 일산의 아파트 사이사이에는 나무가 무성한 길이 있어 둘이서 정담(情談)을 나누며 걷기에 좋다. 그날 언니가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꼭 보라며 추천해주었다.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조디 포스터와 아네트 버닝이 주연한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64세의 나이에 자신의 꿈을 실현한 마라톤 수영선수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자서전 《Find a Way》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중간중간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의 토대가 된 나이애드의 실제 쿠바-플로리다 마라톤 수영 장면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영화이면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에는 여러 가지 매력 포인트가 있는데 나는 첫 번째 매력 포인트로 조디 포스터와 아네트 버닝의 연기를 꼽고 싶다. 나이 들어도 여배우는 여배우일 터인데, 아름답게, 예쁘게, 우아한 모습 대신 연기하는 캐릭터를 가장 적절히 보여주기 위해 여배우의 아름다움을 포기한 대 여배우들의 연기는 오히려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숨길 수 없는 주름이 그대로 드러나고,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지만 그렇기에 조디 포스터와 아네트 버닝의 연기는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보여주며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30년 지기인 두 친구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잘 알기에 배려해주고, 친구의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옆에서 힘을 보태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지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다. 보니 같은 그런 친구가 있다면 어떤 파도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영화 초반 직선적이고 솔직한 아네트 버닝의 대사는 이제 인생의 ‘끝의 시작’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복잡하고 험난한 인생 한가운데 막 발을 들여놓은 젊은 사람들에는 알 수 없는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28세에도 ‘쿠바-플로리다’ 마라톤 수영에 실패했는데 60넘어 성공할 것 같냐는 보니 말에 나이애드는 이렇게 받아친다.     


“죽음으로 가는 일방 도로에 있다 해서 평범함에 굴복할 필요는 없잖아. 60살 되면 세상이 퇴물로 본다니까.”

“세상이 정해주는 한계 따위 안 믿어.”     


나이애드는 네 번이나 파도를 넘지 못하고 실패했지만 다섯 번째 파도를 넘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마라톤 수영의 핵심은 ‘가장 오랜 시간, 가장 큰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은 수영 분야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 인생에서는 ‘쿠바-플로리다 마라통 수영 완주’라는 평생의 꿈을 가로막은 네 번의 파도 외에도 그녀 인생을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었던 거대한 두 번의 파도가 더 있었다. 14세 때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던 수영 코치에게 당한 성폭행과 의붓아버지에 대한 기억.     


누가 그랬던가, 파도를 멈출 수는 없어도 파도를 잘 타는 방법은 배울 수 있다고.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우리의 꿈을, 우리의 인생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파도를 넘어 고통스럽지만 당당하게 자기 삶을 지켜낸 인생 스토리다. 곁에서 실질적으로, 심정적으로 응원해준 친구 ‘보니’가 없었다면 그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지 않았을까. 목표지점을 얼마 안 두고 탈진하여 포기하겠다는 나이애드에게 힘을 주기 위해 직접 깊은 바다로 뛰어들어 함께 수영하면서 용기를 북돋우는 장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     


그날 산책 뒤 우리는 근처에 사는 젠틀맨을 불러 동네 맥주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셨다. 언니와 사진쟁이 오라버니는 40년 지기로, 나이애드와 보니 같은 친구 사이다.      


“그것만한 기분도 없었어요. 바다 한복판에서 서로 격려하고 당신은 힘차게 수영하고 돌고래들이 따라오고 나와 보니와 팀원들은 한마음이었어요. 우린 할 수 있어. 해낼 수 있어. 그 무모한 도전을 모두 믿었죠. 그때 참 좋았죠.”_ 나애애드의 마라톤 수영을 도운 항해사의 말     


올 한해 나를 무너뜨리려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헐떡거릴 때마다, ‘폭탄이 떨어질 때 그와 동시에 길이 열린다’고 한 팃낙한의 말을 떠올렸다. 영화 속에서 거듭 나오는 메리 올리버의 책 구절 “결국엔 모든 것이 이르게 죽지 않는가. 격정적이고 귀중한 한번뿐인 삶을 어떻게 쓸 생각인가”는 이 영화가 보는 사람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단 하나의 말’인지도 모른다.     


“인생에선 네게만 의지해야 돼. 위대해지고 싶다면 너를 믿어. 너의 의지와 정신이 널 이끌어 줄 거야. 다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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