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이네스는 일산 걷기 클럽을 이끄는 리더이다. 이네스가 없는 일산 걷기 클럽은 존재할 수 없다. 나같이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 가입 회원들의 스펙트럼이 넓은 걷기 클럽에 가입한 것은 Y오라버니의 추천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이네스를 만났다. 이네스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데다 현명하여 누구나 이네스를 만나면 편안해하고 즐거워한다.
일산 백석 초입에 있는 오피스텔에 살다 근방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오피스텔에 살 때 이용할 수 있었던 피트니스 센터였다. 밖에 나갈 필요도 없이 1년 365일 언제나 이용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피트니스 센터가 없었고 그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 점에 대해 토로하자 Y오라버니께서 걷기 클럽을 추천해 주었으며, 심지어 본인처럼 든든한 보디가드(?)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들어오라고 말해주었다.
처음 걷기 클럽에 참가한 날이 기억난다. 그날 나의 마음은 어수선하여 모임에 참가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었지만 어찌어찌하여 약속장소에서 출발하여 한참 걷기 중이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그렇게 넓은 호수공원을 한 바퀴 걸은 다음 한 회원이 신입이 왔으니 맥주를 사주시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첫 모임 끝나고 나눈 ‘맥주’에 반해 나는 걷기 클럽에 부지런히 나갔다. 걷기 클럽에 참석한 날은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30여분, 호수공원 한 바퀴 걷는 데 50여분, 다시 집까지 30여분을 걷게 되어 그날 달디단 잠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걸으며 파란집 안에서 벌어지던 황당무계한 일들에 대해 개탄하기도 하고,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를 앞둔 고3 학부형을 위로하기도 하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나의 아저씨’ 매력에 푹 빠진 이야기도 하고 사노 요코 책 이야기도 하고 부부싸움한 이야기까지, 함께 걷는 동안 우리들의 인생 파노라마도 같이 따라 걸었다.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순간이 나에게는 시간의 꽃봉오리였다. 언젠가 그것은 내 마음속에 피어나 향기를 발하며 힘든 순간 마음이 기댈 어깨가 되어줄 것이다. 괴로운 이야기는 이야기를 한 순간 나를 떠났고 나는 거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즐거운 이야기는 이야기를 한 순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얼굴에 웃음으로 번졌다가 다시 나에게 되돌아왔다.
평생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 보낸 마더 테레사는 ‘오늘날 가장 큰 재앙은 나병이나 결핵이 아니라 소속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고 했다. 대면접촉이 점점 줄어가는 황량한 시절에 걷기 클럽 같은 ‘느슨한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모임은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산 호수공원은 1년 365일 누구나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무료 피트니스 센터이다. 호수공원에 가면 걷기 클럽 외에도 마라톤 클럽도 있고 여름에는 야외 음악공연과 노래하는 분수대 공연도 있다. 코로나 이후 오랫동안 걷기 클럽을 가지 못하고 있다. 장미꽃 향기 같은 이네스의 마음이 문득 그리워지는 날에는 사브작사브작 걸어 호수공원으로 가 이네스와 함께 걷고 싶다.
***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_ 하이데거가 연인 한나 아렌트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