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질 수 없는 야생의 매력
‘밤의서점’에 처음 간 것은 대학 후배들과 오랜만에 가진 모임 뒤풀이자리에서였다. 다섯 명이 신촌에서 만나 저녁을 먹은 후 맥주 한잔 할 곳을 찾았는데 우리가 찾던 그 옛날의 맥줏집 ‘놀이하는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러자 ‘밤의서점’ 주인장인 후배가 근처에 있는 자신의 책방에서 한잔을 더하고 가자고 제안했다.
아주 오래전 버스를 타면 연대를 지나 바로 첫 정거장이었던 ‘성산회관’(지금은 정류장 이름이 바뀌었다) 근처 언덕배기에 ‘숨어’ 있는 서점이었다. 9시 즈음 도착했는데 서점 앞에 ‘밤의서점’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어둑한 서점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책장들 사이로 미로가 있었다. 미로라고는 하지만 서점이 크지 않아 금방 서점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희미한 불빛과 책장들 사이 놓인 앤틱한 소품들로 인해 서점 내부는 마치 중세시대 박해를 피해 만든 비밀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개성 뿜뿜 서점이라니.
그날 ‘밤의서점’에서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를 만났다. 처음 보는 초상화였는데 윤곽이 뚜렷한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뭔가 고집스러움이 느껴져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한참 뒤 다시 만난 후배에게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후배는 이 소녀의 ‘모나리자 스마일 같은 표정’ 때문에 끌렸다고 했다. 자세히 보면 고통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는 미국의 유명 가문인 밴더빌트가의 외손녀로 아버지가 신문사를 운영하며 변호사로 일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는 아마도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던 여성다움보다는 자신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강렬하게 꿈꾸는 기질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요리나 자수를 배우는 게 아니라 사춘기 무렵 나무를 타다가 떨어져서 등을 다쳤다고 한다. 완고한 아버지는 개성 강한 딸을 벌주기 위해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집에서 근신하게 했다. 게다가 하필 그때 초상화가를 불러 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니 에너지가 넘치는 왈가닥 소녀는 초상화가 그려지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벌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앨리스의 아버지가 부른 화가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꼽히는 존 싱어 서전트였는데, 그는 ‘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기록한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고. 서전트는 드로잉 없이 바로 직관적으로 붓질을 하는 테크닉을 사용하는 벨라스케스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로, 앨리스의 초상화의 아름다운 미소와 고통과 슬픔, 부자연스러운 포즈도 하나의 ‘기록’이라는 것을 후배는 강조했다.
“나는 그녀가 아버지에게 길들여지지 않아서 짜릿하게 기뻤다” (Night Books Society, by 폭풍의 점장)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의 초상화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앨리스의 초상화에 이 그림을 만나게 해 준 후배의 모습이 겹친다. 후배가 앨리스의 그림에 끌린 것은 앨리스의 초상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녀 역시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매력이 있기에.
이 당찬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는 훗날 아버지가 반대하는 남자와 사랑의 야반도주를 감행하여 6남매를 낳고 백년해로를 했다고 하니, 타고난 배포와 결단력과 용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앨리스는 1950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구글에서 찾아보면 할머니가 된 앨리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아름답고 자신의 결을 포기하지 않는 열세 살 소녀 얼굴이 남아있는 인자한 얼굴이다.
*앨리스 밴더빌트 모리스에 관한 이야기는 ‘밤의서점’에서 발행하는 Night Books Society에 실린 후배 글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