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의 세월을 넘어온 반가사유상을 만나다
전시관 어두운 조명 아래 반가사유상 두 점만 놓여 있었다. 공간의 여백과 1400년의 세월을 건너 지금 내 앞에 있는 반가사유상을 만나는 경험은 특별하였다. 2021년 11월 처음 시작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두 반가사유상을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반가사유상은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의미하며, 반가(半跏)는 원래 땅바닥에 앉아서 하는 반가부좌(半跏趺坐)의 줄임말이지만, 여기서는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 무릎에 얹은 자세를 가리킨다.
‘사유의 방’에 전시된 두 국보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고,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왼쪽에 있는 반가사유상(국보 83호)이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만들어진 것으로 오른쪽의 반가사유상(국보 78호)보다 먼저 만들어졌는데, 두 반가사유상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매우 다른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타인을 만나다 보면 점점 더 나와 다른 그만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처럼.
오른쪽에 놓여 있는 진중한 반가사유상이 더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왼쪽에서 즐겁게 반가사유하시는 분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 장난기 어린 웃음에 반했다. 패션감각도 왼쪽에 있는 반가사유상이 오른쪽 분보다 뛰어났다. 나에게는 왼쪽 반가사유상의 표정이 그윽한 ‘미소’가 아니라 장난기 어린 ‘웃음’처럼 느껴졌는데, 그것이 좋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어제 본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라도 생각하는 것일까, 어제 본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벗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생각하는 것일까. 즐거운 명상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환해지는 듯했다.
이전까지 다녀본 전시들은 모두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지식으로 축적하고 교양으로 전환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들이었다. 수많은 작품과 그에 부속된 수많은 정보들을 한 번에 보면서 머릿속에 입력했다. 한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었다.
‘사유의 방’ 전시는 그 틀을 깨어서 신선했다. 국보급 보물들에 대한 설명은 전시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의 생략은 보는 사람이 편견 없이 자신만의 감각으로 두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런 배려 덕분에 온전히, 충분히 두 반가사유상을 그 각각의 개성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