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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온 Jun 20. 2023

마상청앵도

꽃 아래서 듣는 피리 소리

지난 2월 어느 날 단톡방에 누군가 정성껏 만든 3월 달력 파일이 올라왔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제 달력’에는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날짜들과 함께 ‘마상청앵도’란 그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림을 보자 봄의 정취가 눈을 가득 채워버렸다. 올해는 꽃보다 먼저 ‘마상청앵도’가 봄을 마중하였다. 우리나라 보물 제1970호인 ‘마상청앵도’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마상청앵도’는 김홍도의 그림으로, ‘마상청앵’은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제목이 가리키듯 그림은 말 위에 앉은 선비가 나무에 앉은 꾀꼬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선비뿐만이 아니라 선비를 모시고 가는 시종도 같이 꾀꼬리를 쳐다보고 있는데 공간의 여백에서 아련한 봄의 정취가 묻어나고, 꾀꼬리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어쩌면 애잔한 봄의 정취를 이렇게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봄의 정경을 담은 그림이 마음속으로 천천히 물들어왔다. 어떻게 이렇게 편안하게 아무것도 안 그린 듯하면서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림 왼편 위쪽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佳人花底簧千舌   아리따운 사람은 꽃 아래에서 천 가지 피리 소리를 듣고

韻士樽前柑一雙   시인은 술동이 앞에서 한 쌍의 귤을 보는구나

歷亂金梭楊柳岸   언덕 위 버드나무를 어지러이 누비는 저 꾀꼬리

惹烟和雨織春江   안개와 비를 엮어 봄의 강을 짜는구나    

 

김홍도의 오랜 친구인 이인문이 쓴 시이다. 김홍도와 도화서 친구인 이인문은 김홍도의 여러 그림에 자신의 시를 남겼다고 하니 둘의 깊은 우정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림에 들어가 있는 시 마지막에는 ‘이인문이 감상하고, 단원이 그리다(碁聲流水古松舘道人 李文郁證)’라는 구절이 있다. 

     

‘마상청앵도’를 보면서 동양의 피카소로 불리는 중국의 ‘치바이스(齊白石)’가 그린 그림과 글이 떠올랐다. 김홍도와 마찬가지로 치바이스의 그림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꽃, 나무, 물고기, 새 들이 등장하는데, 진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생동감이 넘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식으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치바이스는 시와 글씨, 그림, 조각 등을 모두 스스로 익혔다고 한다.    

 

2011년 중국 베이징 미술품 경매에서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는 4억 2550만 위안(약 718억 원)에 낙찰돼 현대 중국회화 작품 가운데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하였는데, 당시 이 경매가는 피카소와 클림트 그림값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97세로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치바이스는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여든이 넘어서야 그림다운 그림이 나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에도 그런 화가가 있다. 3만 장이 넘는 작품을 남긴 가쓰시카 호쿠사이. 아흔세 번이 넘게 이사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한데, 그림 그리는 것에 미쳐있던 화가는 방이 어질러지면 치우는 대신 이사를 했다고 한다.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남긴 대표작은 후지산의 풍경을 그린 ‘후가쿠 36경’이다.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둘러싼 일화를 떠올리면 그는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다시  ‘마상청앵도’를 본다. 아련한 봄기운이 고즈넉하게 전해져 온다. 선비가 길을 멈추고 넋을 놓아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꾀꼬리 소리는 어떨까 상상해 본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봄의 곡조가 은은하게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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