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창조적 표현 - 그림자를 예술로 바꾸기

by 김경은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억눌린 욕망, 부끄러운 감정, 두려운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자를 단순히 의식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표현은 그림자와의 대화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내면의 어둠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창조적 통로다.


융은 이렇게 강조했다."무의식의 내용은 단순히 인식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표현되고, 형상화될 때 비로소 의식과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글쓰기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이다. 일기를 쓰듯, 떠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자유 연상 쓰기를 해보자. 검열하지 않고 마음속 목소리를 적는다. "나는 화가 난다. 나는 인정받고 싶다. 나는 질투한다." 이런 단순한 문장들이 쌓이면서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화 일기도 효과적이다. '나'와 '그림자'의 대화를 기록한다. "나는 너를 원하지 않아." → "나는 너의 열등감이야. 너를 지켜주려고 숨어 있었어."

글쓰기는 그림자가 단순히 추상적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언어로 자리 잡게 만든다. 언어화된 그림자는 더 이상 나를 무의식에서 압도하지 못한다.

때로는 언어가 부족하다. 그럴 때 그림자는 이미지로 표현되기를 원한다. 그림, 낙서, 색칠 같은 단순한 행위도 무의식의 언어다.


무의식 드로잉을 시도해보자. 특정 주제 없이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린다. 괴물, 어둠, 혹은 밝은 빛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평가하지 않고 그리는 것이다.

심볼 작업도 좋다. 꿈이나 떠오른 상징을 그림으로 옮겨본다. 예술치료에서는 종종 환자가 그린 그림에서 반복되는 색, 형태, 구도를 해석한다. 그것은 억눌린 그림자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닫힌 문'을 그린다면, 그것은 억눌린 욕망이 표현되지 못하고 갇혀 있음을 상징할 수 있다. 그림은 그림자에게 목소리를 주는 또 다른 언어다.

그림자는 몸에도 새겨진다. 불안은 근육의 긴장으로, 분노는 목소리의 떨림으로, 슬픔은 어깨의 무거움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림자를 해방하는 과정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즉흥 움직임을 해보자. 음악을 틀어놓고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어색함, 불안, 분노를 몸으로 표현해본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곧 몸이 자기만의 언어를 찾기 시작한다.

호흡과 발성도 중요하다. 억눌린 감정을 소리로 내뱉는다. 울음, 웃음, 신음도 그림자의 언어일 수 있다. 큰 소리로 "아!" 하고 외치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감정이 흐르기 시작한다.


연극적 실험도 시도해볼 만하다. 싫어하는 인물의 말투를 흉내 내고, 몸짓을 따라 하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자기 감정을 느껴본다. 몸의 언어는 이성적 해석을 넘어, 억눌린 감정을 원초적 차원에서 해방한다.


영화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발레리나다. 그녀는 '백조'의 순수함은 잘 연기했지만, '흑조'의 본능적이고 관능적인 면을 표현하지 못한다. 감독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내면의 억눌린 욕망과 어둠을 무대 위로 드러내라고 요구한다.

니나는 처음엔 억눌린 욕망을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림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몸의 언어(춤), 이미지(환각), 자기 대화를 통해 어둠을 표현하게 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그녀를 새로운 차원의 예술로 이끈다.

〈블랙 스완〉은 그림자를 억누를 때 생기는 불안과 혼란, 그리고 그것을 예술적 표현으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창조적 에너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니나가 춤을 통해 억눌린 욕망을 드러낼 때, 그림자는 파괴가 아니라 예술적 절정으로 변모한다.

미니시리즈 〈퀸스 캠빗〉에서 주인공 베스는 체스를 두는 순간 억눌린 불안과 욕망을 전략과 승부의 언어로 풀어낸다. 체스판은 그녀의 무의식이 표현되는 창조적 공간이었다. 이처럼 예술, 놀이, 신체 활동은 모두 그림자의 에너지를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상징적 무대가 된다.


창조적 표현이 주는 효과는 크다. 억눌린 감정은 증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창조적 표현은 증상을 줄이고 에너지로 전환한다. 그림자가 언어·이미지·몸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의 일부로 통합된다. 억눌린 그림자가 타인에게 투사되지 않고, 나의 창조적 작업 속에서 해소된다. 그 결과, 타인과의 관계는 더 평화롭고 진실해진다.


오늘 하루 떠오른 불편한 감정을 짧은 글로 적어보자. 떠오른 이미지를 간단한 낙서로 그려보자. 음악을 틀고 3분 동안 즉흥적으로 움직여보자.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해보는 것만으로도, 억눌린 감정은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다음 회 예고일상 속에서 그림자를 다루는 작은 습관들과 넷플릭스 〈YOU〉가 보여주는 어둠 속의 만남을 통해, 실천 가능한 그림자 통합법을 알아본다.

keyword
이전 15화제15회: 그림자와의 대화 - 실천의 첫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