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마주하는 첫걸음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한 철학적 사유나 전문가의 상담이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 목록'을 적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어쩌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작업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할 때, 그 감정은 대부분 내 안의 억눌린 그림자를 건드린 결과다. 따라서 "나는 저 사람의 무엇이 꼴 보기 싫은가?"를 적는 순간, 사실은 "나는 내 안의 어떤 부분을 부정해왔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작업을 융 심리학에서는 '거울 작업(mirror work)'이라 부를 수 있다.
목록 쓰기의 방법은 간단하다.
첫째, 이름을 떠올린다. 일상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반드시 큰 원한이 있는 대상일 필요는 없다. 매번 만나면 이유 없이 불편한 동료, 자꾸 눈에 거슬리는 친구, 혹은 연예인·정치인 같은 공적 인물도 좋다.
둘째, 구체적으로 적는다. 단순히 "싫다"가 아니라, 어떤 점이 싫은지 구체적으로 적는다. "자꾸 자기 자랑하는 모습이 싫다." "게으른 태도가 싫다." "사소한 말에도 발끈하는 게 싫다."
셋째, 반대로 질문한다. 목록을 다 적은 뒤, 이렇게 물어본다. "나는 언제 저런 행동을 해왔는가?" "나는 왜 저런 행동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타인 비난에서, 자기 그림자와의 대화로 이동한다.
한 직장인은 동료가 회의에서 자꾸 자기 아이디어를 크게 포장하는 모습이 싫다고 말했다. 그는 "겸손하지 못하다, 나대는 게 꼴 보기 싫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거울 작업을 하면서 그는 깨달았다. 사실 자신도 늘 인정받고 싶었지만, "겸손해야 한다"는 규범 때문에 욕망을 억눌러왔던 것이다. 동료의 모습은 억눌린 자기 욕망이 투사된 결과였다.
이처럼 목록은 타인을 비난하는 글이 아니라, 내 안의 부정된 욕망을 드러내는 지도가 된다.
융은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타인에게 던지는 비난은, 종종 자기 그림자의 투사일 뿐이다."
'싫어하는 사람 목록'은 단순히 불만을 적는 노트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그림자가 반영된 거울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특질 속에서, 나는 내가 억압한 자질을 발견한다.
그림자와의 대화는 목록 작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빈 의자 기법을 시도해보자. 자기 앞에 빈 의자를 놓고, 싫어하는 사람 혹은 불편한 감정을 그 자리에 앉혀본다. "너는 왜 자꾸 나를 불편하게 하니?"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스스로 의자를 바꿔 앉아, 그림자의 목소리로 대답해본다. "나는 네가 억눌러온 질투심이야. 나는 네가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야."
일기 쓰기도 효과적이다. 종이에 "나는 너를 싫어한다"라는 문장을 쓰고, 그 옆에 그림자의 목소리로 반박을 적는다. "네가 싫다는 그 모습은 사실 네 안에도 있어. 너는 나를 부정하지만, 나는 너의 일부야."
이 과정을 통해 무의식의 대사를 의식화할 수 있다.
그림자와 대화할 때, 우리는 억눌린 욕망을 알아차린다. 무의식의 목소리가 의식에 수용되면, 불안과 강박 같은 증상이 완화된다. 그림자가 말할 기회를 얻으면, 굳이 증상으로 표현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림자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면, 타인에게 투사할 일이 줄어든다. "저 사람이 싫다"는 감정이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저 사람을 통해 말하는구나"라는 깨달음으로 바뀐다.
오늘 저녁, 조용히 앉아 노트를 펴고, 떠오르는 "싫은 사람" 세 명만 적어보자. 그리고 각각의 이름 옆에, 왜 그 사람이 싫은지 구체적으로 적는다. 마지막으로, 그 특질이 내 안에는 없는지, 나는 왜 그것을 거부하는지 써본다.
그리고 종이를 펴고 이렇게 시작해 보자. "내 안의 그림자에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니?" 떠오르는 목소리를 검열하지 말고 적는다.
이 작업은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우리는 그 순간, 싫은 사람을 통해 자기 그림자를 마주한다.
다음 회 예고그림자를 글로, 그림으로, 몸으로 표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창조적 표현을 통한 그림자 통합법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방법들을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