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 감정이 다른 모습으로 비틀려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중독과 일탈이다. 욕망, 두려움, 공허함을 직면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것을 대체할 자극이나 행위에 몰두한다. 중독과 일탈은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억압된 그림자가 우회로를 통해 드러나는 방식이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그림자의 중독적 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한 화학 교사 월터 화이트는 암 진단을 받은 후 가족을 위해 돈을 벌겠다는 명분으로 마약 제조에 손을 댄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행동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권력과 지배에 대한 중독으로 변질된다.
월터의 그림자는 "나는 무가치하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두려움을 인정하지 못한 채, '하이젠버그'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냈다. 그 안에서 그는 점점 권력과 통제의 쾌감에 빠져들었다.
중독은 단순히 약물이나 행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억눌러온 자아의 욕망이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 것임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퀸스 캠빗〉의 주인공 베스 하먼은 체스 천재다. 그러나 그의 삶은 영광과 함께 끊임없는 고독과 불안으로 점철된다. 어릴 적 트라우마와 고아원에서의 상처는 그녀의 내면에 깊은 그림자를 남겼다.
베스는 체스판 위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삶의 혼란과 외로움은 술과 약물 의존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알코올 중독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억눌린 외로움과 두려움이 증상화된 그림자였다.
이 드라마는 천재성과 중독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보여주며, 그림자가 어떻게 창조성과 파괴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범죄 드라마 〈오조크〉는 가정적이고 성실한 회계사 마티 버드가 마약 카르텔의 돈세탁에 휘말리면서 일탈의 세계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다룬다.
마티는 처음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범죄에 발을 들인다. 그러나 점차 그는 합법과 불법, 도덕과 범죄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자극과 권력감을 느낀다. 그의 그림자는 '평범한 삶에 대한 지루함'과 '통제 욕구'였다. 그는 그 욕구를 정직하게 직면하지 못했고, 결국 일탈의 형태로 살아내게 된다.
〈오조크〉는 우리가 도덕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가면 뒤에서 일탈을 갈망하는 그림자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말한다.
중독은 억눌린 욕망의 다른 얼굴이다.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가 보여준다. 중독은 외로움과 두려움의 신호다. 〈퀸스 캠빗〉의 베스가 증명한다. 일탈은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그림자의 발현이다. 〈오조크〉의 마티가 드러낸다.
융은 말했다."억압된 욕망은 파괴적이거나 창조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에 사로잡힌다."
즉, 중독과 일탈은 단순히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그림자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나는 어떤 반복적 습관이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그것은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내가 외면한 그림자가 보내는 신호일 수 있지 않은가? 내 삶의 작은 일탈은,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부정한 결과는 아닌가?
억눌린 그림자는 중독과 일탈로 돌아온다. 《브레이킹 배드》는 권력 욕망의 중독을, 《퀸스 캠빗》은 고독의 그림자를, 《오조크》는 평범함에 대한 불안을 보여준다. 중독과 일탈은 병리만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단서다. 그것을 직면할 때만 그림자는 파괴가 아니라 성숙의 자원이 된다.
다음 회 예고억압된 욕망은 어떻게 귀환하는가? 〈Sharp Objects〉, 〈Black Mirror〉, 〈Mad Men〉을 통해 억눌린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괴적 힘을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