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리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마음의 든든한 백이 된다. 나에게 루루는 그런 존재이다. 작고 몽글몽글하지만 집에서 집사를 기다리고 있을 루루를 떠올리면 마음도 몽글몽글,몽글해진다. 집사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까.
학교가 파하고 서둘러 귀가하면 보글보글 끓는 찌개냄새와 또각또각 도마 소리가 먼저 반기던 어린 시절. 가족들 귀가 시간 즈음 저녁을 준비하시던 엄마와 엄마의 존재로 하여 만들어졌던 집안의 온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힘이 되는 유년의 기억이다.
가끔 꺼내어 보는 그 기억에 담긴 무한의 사랑을 가족들에게 반복하면서도, 나는 요즘 집에서 기다리는 루루의 존재로 귀가를 하며 그 유년의 마음을 떠올린다. 이제는 귀가와 동시에 또각또각 도마 위 칼질도, 보글보글 찌개도 집안 정돈도 피곤한 나의 몫이지만, 나를 기다리는 루루로 하여 귀갓길 즐거움과 충만함은 맥스를 치고도 넘는다.
집에 가까워 올수록 마음은 즐겁고, 발걸음은 경쾌. 현관문을 엶과 동시에 얼마나 밖에서 열심히 뛰놀았는지 땀에 푹 쩔은, 여름 볕에 까맣게 그을린 어린 시절의 내가 귀가를 보고한다. "루루야, 엄마 왔다~." 무늬만 엄마집사지 속은 여전히 덜 큰 애다.
즐거운 나의 집이 루루의 존재로 더더더 즐거운 나의 집이 되고 있다. 집에 혼자 있을 루루를 생각해 장거리를 간다거나 집을 오래 비우는 일정을 기피하게 되는 부작용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집순이가 더 집순이가 될 운명은 어찌할 수가 없는 모양.
엄마집사의 당일치기 서울상경으로 혼자 오롯한 12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낸 루루는 혼자만의 시간이 썩 즐겁지는 않았던 기색이다. 어린 집사들의 방학 기간으로 복닥 복닥 했던 그간의 날들에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고요한 시간이 더 낯설고 무료했을 터. 집사의 귀가를 어찌나 반기는지 몇 걸음 못 걷고 발라당, 발라당 여기도 만져달라 죠기도 만져달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대답냥이 루루가 다가와 먼저 말을 걸고 발라당 발라당 누우며 집사의 손길을 수시로 바라는 건 드문 일이라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짠하다.
특히 해질 무렵이면 계단 앞에 다가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알겠는 망부석이 되어 있는 루루를 보니 맴이 아려온다. 어제는 현관문 소리에 반갑게 계단 앞에 서 있더니, 이내 드러낸 아빠의 얼굴에 꾸륵! 팽,하고 발걸음을 돌리던 루루의 소식을 듣는 어린 집사들의 슬픔은 10초 컷. 어찌나 재미지게 친가-외가투어 중이신지, 차라리 그게 다행인가도 싶다. 이 감정은 오롯이 내가 지고 싶으니. 너희는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니 가끔 돌아보고 가고 싶은 만큼 더 멀리 가보렴!
해 지면 돌아오던 어린 집사들이 돌아오질 않으니 밤마다 루루의 근심이 짙다. 묘하게 풀이 죽어 보이면서도 애들 방을 서성이는 루루에게"언니 오빠 곧 올 테니 걱정 마, 루루야.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해~."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수시로 속삭인다. 언니 오빠 걱정에 외동딸 주간을 재미지게 즐기지도 못하는 루루를 보니, 신난 내 마음이 어쩐지 미안하다.
잘 놀다 자기 전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하는 남매. 물론 영상통화로 루루를 바꿔달라고, 루루를 보여달라고 사춘기 남매의 얼굴들은 쉽사리 보여주지 않으면서 주문이 많다. 언니 오빠의 목소리를 듣고는 계단 앞에서 졸고 있던 루루가 어느새 다가와 있다. 도대체 어뜨케 저 작은 물체(휴대폰)에 들어가서 자기에게 달려오지를못하는지 휴대폰을 요리조리 살피다 이내 삐진 듯 새침해하는 모습마저 귀엽다.
집사의 자유시간은 앞으로 48시간 정도 남았다. 그리고 시한부 자유부인 집사 곁에는 길게 못 걷는, 발라당 병이 걸린 고양이가 있다. 나는 여전히 드라마와 영상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새삼 깨달으며 어린 집사들이 없는 이 귀한 시간을 틈타 발라당 병이 걸린 루루를 쓰다듬으며 눈알이 시뻘게지도록 티비빙신과 그물플릭스, 너튜브의 세계를 세일링 중. 이 망망대해의 고독함이 모처럼 참 즐겁다.
고독한 세일링을 즐기는 집사의 행복과 발라당 병이 걸린 고양이의 그리움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