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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Nov 28. 2024

첫눈 오는 날,

고양이와 첫눈

요사이 아침 고요함이 좋았다. 햇님도 추워진 날씨 탓에 이불 끝자락을 붙잡고 미적거리다 늦게 늦게 떠오르는 모양일까. 그 덕에 우리 집 햇님이도, 가족들도 아침 늦도록 단잠을 잤다. 요사이 우리 집의 아침은 그다.


헌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고요 아침, 여느 아침과는 다른 산함이 멀스멀 아직 깨지 않은 몸의 감각들감지었다. 세상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부산함의 근원지를 바라보니 창가에 작은 털인간이 발로 서 새털 같이 가벼운 몸을 파닥파닥거리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어머!!! 저게 뭐야?! 되게 조그만데 하늘에서 마구마구 떨어지네. 요기도 떨어지고, 죠기도 떨어지고. 아 잡고 싶어. 아 만져보고 싶어. 아 궁금해~'


묘생 첫눈을 마주한 작은 털인간은 흩날리는 꽃송이들을 앞에 두고 사냥본능으로 흥분한 까닭인지 애가 타는 마음인지 통통 거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잔망루미를 보며 집사는 조용히 마음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올해의 첫눈에게 말이다. '안녕, 또 왔네~ 반가워.'


그러면서 루미의 이족보행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집사들이 잠든 밤이면 루미가 두 발로 일어서 집안 곳곳을 누비는 상상의 나래를 잠시 펼쳤다. 제리 친구 톰과 같이 부스터를 달고 두 발로 달려 다니고,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리모컨으로 티비를 켜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집사들은 루미가 여직 제 이름도 못 알아듣는 2프로, 아니... 20프로쯤 부족한 아가 냥이로 알고 있지만 실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이것을 들키지 않으려 철두철미하게 연기하고 있는 똑냥이는 아닐지. 부러 백치미로 무장하여 집사들이 계속 마음이 쓰이게 하고 손이 가게 하는, 꽤나 만족스러운 집고양이의 삶을 연명하고 있는 식스센스급 반전을 생각해 보았다. 하, 이 잔망스러운 녀석!


유리창 밖의 눈은 아무리 안달 나 해도 어찌할 수가 없으니 루미는 이내 체념하고 캣타워에 올라 첫눈 감상을 하는 듯했다. 낮잠을 한숨 자는 사이 누군가 잔망루미의 뇌와 체력을 리셋시켰는지 루미는 창가를 떠나질 못하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무한의 도돌이로 낮잠과 부산스러움을 반복했다던 첫눈 내린 어제의 이야기. 그렇다면 루루는 첫눈 오는 날을 어찌 보냈을까?


'눈 오는구나? 루미는 많이 신났구먼. 암~, 저 나이는 세상만사 궁금한 것 투성이고, 흩날리는 눈송이에도 꺄르르 웃음이 날 나이이지~ 즐겨라, 아가 냥이. 훗'


루루는 잠깐 첫눈을 감상하고는 집사에게 아침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코를 벌름벌름하며 집사의 손끝에 코인사를 하는 루루를 보며 너는 눈보다 집사가 좋구나, 고마워 예쁜 아가. 눈맞춤을 하니 벌러덩을 누워 집사의 손길을 바라는 모양. 황공무지로소인 집사는 정성스레 루루의 온몸을 구석구석 시원하게 긁어주었더랬다.


한 번 살아본 계절이라고, 지난겨울 눈구경 실컷 하며 살아본 삶이라고. 그녀는 내리다 말다, 쌓였다 녹았다 하는 눈과 첫눈에 신이 나 하루종일 창가를 떠나지 못하고 오두방정을 떠는 루미를 오래도록 지켜볼 뿐이었다.



첫눈을 대하는 자매 고양이의 온도 차가 집사 나름의 관전잼이었다는 첫눈 내린 날. 계절이 오고 가는 그 순간들을, 함께하고 싶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음을, 그 계절을 다시 맞을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에 두 고양이도, 집사도 행복했다는 어제의 이야기이다.


살아있다는 그 단순한 놀라움과 존재한다는 그 황홀함에 취해(김화영 선생님 말씀), 한 계절이 오고 한 계절이 가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행복했다. 두 고양이와 함께한 행복모먼트를 기억하며 또 하나의 행복돌을 가만 올려놓는 밤, 행복하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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