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아, 너는 언제 네 인생이 도약했다고 생각했어?"
엄마의 생신을 축하드리러 간만에 친정을 가는 길, 남편이 물었다. 늦여름이었다. 해가 길어져 밖은 아직 환한 다섯 시 즈음이었나.
"도약?"
"응, 레벨-업 되는 순간 말이야. 나는 대학교 입학했을 때, 결혼했을 때, 햇님이-별님이 태어났을 때, 그리고 개원했을 때 인생이 한 단계 더 레벨-업 되었다고 느꼈었거든."
삶이 바빠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데 급급한 우리는 평상시 대화가 많지는 않다. 동쪽 끝에 살고 있어 인간의 도리를 하기 위한 장거리 이동을 할 때 주로 인생의 심도 있는 대화들을 하는 편.
"글쎄...."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 인생의 순간들을 되감아 보았지만 언제였던가... 순간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뒷자리에서 잠이 들었던 두 토끼도 언제 잠에서 깨었는지, 엄마 아빠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자신들의 삶에서 언제고 있을지 모를 인생의 도약을 상상하는 듯싶었다. 내 인생 도약의 순간이라...
무난한 삶을 살았다. 열심히 살았고,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느끼며 살다 보니 결혼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서 도약을 한다기보다는 그저 그 지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았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감사한 시간이었고, 행복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관계적인 측면을 제외한 오롯한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돌아봤을 때 도약의 시간은 없었던 것, 이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오빠, 되게 슬프게 난, 발령받은 그 이후에는 늘 하향곡선이었던 거 같아. 작은 기쁨들과 보람을 느낀 순간들이 분명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던 것 같아."
먹먹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풀 한 포기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났다. 정작 내 삶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로. 나의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데, 풀 한 포기가 무슨 의미랴.
어떤 사실은 그 사실을 알기 전의 나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게 하지 않는가. 그날의 자각은 짧지만 강렬했고, 추락하고 있는 나를 구할 방법은 이 궤도를 이탈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그리하여 사직을 결심했다. 올해 아이들을 잘 올려 보내고 이젠 학교를 떠나려 한다.
11월의 마지막 날 제출한 사직서와 서약서. 단 두 장의 서류로 정리될 내 삶의 반, 이렇게 교직의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