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오는 윤이의 손에 작은 통이 들려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더 작은 방울토마토 두 알이 있다. 혹시나 아라토마토가 다칠까 조심스레 따서 방울토마토가 터질까 조심조심 학교로 걸어왔을, 윤이의 그 모습을 상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지난봄, 아이들과 작은 씨앗을 심었더랬다. 고사리 손으로 작은 에코팟에 흙을 담아 봉선화, 강낭콩, 방울토마토를 심어 애칭도 지어주고, 다 자란 식물녀석들과의 행복한 미래도 상상했다.
너희가 심었던 것은 씨앗이었을까, 꿈이었을까.
잭과 콩나무처럼 하늘까지 키워 부자가 되겠다는 아이, 예쁘게 봉숭아가 피면 잘 밤에 손톱에 물을 들여 첫눈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원을 이루겠다는 아이, 맛있게 콩장을 해 먹겠다는 각오로 네 미래는 콩자반의 이름을 지어줬던 아이, 저마다 행복한 상상을 하며 씨앗과 함께 꿈도 심었다.
우리반 아이들처럼 파릇파릇 싱그러웠던 새싹이들,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쐬어주고, 비 오는 날엔 밖에 내다 두어 씨앗의 목마름을 달래주었다. 매일매일 씨앗의 성장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틈만 나면 화분에게로 가 초집중 모드로 흙 속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까만 흙더미 속에서 코딱지보다도 작은 푸르름을 발견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눈부시게 푸르렀다. 자신의 화분에서 새싹이 솟을 때마다 아이들이 질러댔던 환호소리는 두 옥타브 높았고, 도무지 싹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 껀 죽은 것이 틀림없어.' 절망하던 아이들의 한 숨소리는 깊었다.
마지막까지 소식이 없어 깊이 절망했던 서의 강낭콩 화분. 콩콩이가 간신히 힘을 내어 떡잎을 들어 올렸을 때 서는 정말 아이의 탄생에 기뻐하던 영락없는 콩콩이아빠의 얼굴이었다. 작은 씨앗이 새싹을 틔우고 자라는 신비로운 순간들을 함께 하며, 그렇게 날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자랐다.
한 달여간의 교실 동거 후, 영양보충의 분갈이를 위해 각 가정으로 배달된 새싹이들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윤이의 일기장에서 가끔 아라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세워주었다는 일기, 드디어 꽃이 피어 너무 기쁘다는 일기, 드디어 방울토마토가 달렸다는 윤이의 일기는 그 주의 히트작이었다. 가자마자 엄마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제보, 할아버지-할머니 댁 밭에 심어두었다는 아이, 내 껀 어디 갔더라? 씨앗을 심었던 기억마저 잊어버린 반응까지 윤이의 일기로 우리는 희망찼던 4월을 기억했다.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키워 열매를 맺은 윤이와 윤이네 가족은 그러는 동안 아마 행복했고 희망찼을 것이며, 때로는 불안도 했고 걱정스러운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알맞은 온도와 물, 적절한 햇빛을 쬐이며 아라 토마토를 향한 작은 관심과 수고스러운 노력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정성스런 하루하루가 모여 이 겨울 붉은 결실을 맺은 것.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대추 한 알 , 장석주
"오늘 가장 열심히 지내는 친구한테 선물로 줄까?"
"선생님이 드셨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먹지? 이 토마토 두 알에 윤이네 가족의 사랑과 정성, 수고, 걱정, 근심, 기쁨, 행복, 피+땀+눈물들이 다 담겨 있는 걸~ 선생님 눈에는 다 보여. 어떻게 이렇게 잘 키웠을까~? 윤이는 대단해. 정말~"
12월 첫날, 교실을 찾아온 반가운 손님에 뭉클한 아침이었다. 집에 갈 때까지 예쁘다예쁘다 쓰다듬어 주는 녀석, 맛있겠다 맛있겠다 노래를 부르는 녀석, 그게 뭐예요? 묻고 또 묻는 녀석, 하나의 씨앗을 정성스레 키워 열매 맺어 오는 녀석. 이 작은 교실 안에도, 내일의 우주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