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서 2024년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새날에 대한 기대로 격앙된 목소리로 카운트 다운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2024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빠 엄마."
"자, 어서 새해 소원 빌자~"
새해 인사를 나누며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고, 감은 두 눈에 새해를 함께 맞이하지 못한 그들의 실루엣이 드리워졌다. 이제쯤이면 평안에 이르셨습니까, 선생님들. 삶의 순간순간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들. 새로운 해가 시작된 순간에도 나를 찾아온 건지, 내가 찾아간 거지 모를 마음으로 그들에게 리셋 버튼을 쥐어 주고 싶었다. 황폐해진 그들의 하루와 삶에 리셋 버튼을 쥐어주고, 그래도 살아보라며 - 이제는 무력함에서 벗어나 평안하시라며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괜찮냐며 걱정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저는 그저 단단해서 부러지는 것이라며 걱정 마시라 했지만.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유약함을 마주하고는 새해의 첫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병이다.
종업 전전날, 서랍 안 깊숙이 넣어 둔 녹음기를 꺼내게 되었다.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걸어 불법녹음을 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그즈음, 나는 가끔 녹음기를 켜두고 생활했었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 선생님으로 아이들 곁에 머무르려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만, 시시각각 말을 달리하며 일관되게 지랄 맞은 어른을 보며 운이 나쁘면 고소를 당하거나 불명예를 뒤집어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정당한 교육활동이었음에도 내 아이기분상해죄로 나락을 걷게 될 징조들이 보일수록 나를 지켜낼 최소한의 무엇이 필요했다. 녹음기를 가방에 달아 보내는 학부모만큼 녹음기를 틀고 생활하는 선생님도 비겁할까. 이렇게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싶은 것인지 하루하루의 증명을 담아내다 나의 치졸함에 그것마저 관두었더랬다.
종업을 이틀 앞두고 민원전화를 받고 싶진 않았다. 사실 확인을 요구할 경우, 긴 말없이 이 과정을 파일로 보내드릴 심산으로 녹음기를 켠 것.
그날도 한 아이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자신을 몰아세우며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아이들은 그런 게 아니라 자신들이 놀이하는데 크게 웃고 방해를 해서 그러지 말라고 얘기를 해도 듣지를 않아 다툼이 일어난 상황이라 했다.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경미하지만 신체적 폭력을 행사했음과, 맞은 아이가 자신의 오빠를 데려오겠다 하자 너를 때려서 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할 수 있다며 화를 냈음을 확인했다. 안 그랬다며 쟤네들이 친해서 자기를 안 좋게 얘기하는 거라는 아이와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과 이 상황을 목격했다는 아이들의 대치가 팽팽했다. 잠깐 자리를 비우는 상황, 녹음기가 켜져 있었다면 아이들이 하교하고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교육적으로 마무리. 서로의 미안한 점 사과하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다짐하기. 그날은 그랬고,
함께로서의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도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 중재와 화해, 지도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자, 한 톨의 미련도 없이 교실을 떠나련다 했지만,,,,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 유난히도 하얀 얼굴의 그 아이가 코끝과 눈두덩이가 빨개지도록 대성통곡을 하며 안겼다. 결국 올해도 [마지막 순간엔 웃으며 헤어지기]의 최종 미션을 성공하지 못했고아이들을 안아주며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왜 버티지 못했을까... 이토록 어린아이를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회한의 눈물이 흘렀다.
한 교실의 어린이들이 믿을만한 유일한 어른이 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의 무게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무겁다고 스스로 가늠했던 선생님의 무게를 미련스레 떠안고 있다 바스러졌다.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후회 없이, 즐겁게, 살아야겠다 새삼스레 마음을 먹는다.
학교가 참 좋았다. 학교가 좋아 여덟 살 입학하며 시작한 학교사랑은 마흔까지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과 살 부비며 함께일 때도 좋았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빈 교실에서 혼자 고요히 머무르는 시간도 좋았다. 짐 정리를 핑계로 혼자 우두커니 교실에서 미련을 떨다가, 이런 날은 축포를 쏘아야 하지 않겠냐며 급 성사된 선배선생님들과의 모임에 일단 과음을 하러 나가보려 급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