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by 세일러 문


길가의 태극기에 들끓던 마음이 원망을 넘어 부아가 되어 치밀어 오른다. 나라의 녹을 받아 먹고 살고 있다만, 범죄자의 인권도 지켜주는 이 나라가, 어찌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이렇게 방관할 수 있는지, 이게 나라인지. 이 존재감이 참을 수 없이 가벼워 서글프다.


대화의 말끝을 잘라 드시며, 애도 나아보지 않은 주제에 뭘 알겠냐며 비하하는 학부모님들 덕에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바랬던 날들이 있었다. 바람대로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부디 연세 있으신 선생님들 반만은 피해다오, 염원하는 학부모들 덕에 상처받는 선배 선생님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 덕에 기쁘게 나이를 먹지도, 뱉지도 못하는 나이가 되어 있다. 지켜주어야 했던 후배교사를, 젊다 못해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해 비통하다... 이 마음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슬픈 것은, 우울과 무력함의 어느 한 면이 몹시도 닮아 잇닿아 있기 때문일 것. 이것은 곧 나였던 일이고, 나일 일인 것이다.



다시 모든 것이 또 시작될 아침이 오지 않기를, 차라리 이대로 깨지 않고 깊은 잠에 들기를... 바랬던 밤들. 모든 것들이 하찮고 같잖아 삶의 끈을 그냥 탁, 놓아버리면 다 끝나지 않겠느냐 생각했던 그 밤이 결국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초임인 나를 앞에 앉혀둔 부부는, 아이가 전학하자마자 생활고로 인해 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들을 부탁했던 그 공손함을 버리고, 아이의 문제 행동과 부적응의 탓을 모조리 아이들과 나에게 돌리며 의기양양했다. 모욕적이고 공포스런 순간이었다. 네 자식이 그런 것을 너무도 잘 알겠는데 왜 모르냐 묻고 싶었지만 나는 어렸고, 무기력했다.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받은 나를 마주한다. 그렇게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식사 준비 중, 뉴스를 듣던 아들이 다가와 안아준다. "엄마, 죽지마."



교실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분명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방학을 목전에 두고, 오늘만 무사히- 오늘만 무사히- 그리 보냈다면 그래도 좀 숨을 쉴 수 있었을 텐데... 기어이 방학을 앞두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자기를 좀 구해달라고, 이 지옥에서 지켜내야 할 아이들이 있다고, 분명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 것일 테다.


지금까지 개인사로 종결되었던 수많은 동료 교사와 서이초 선생님 개인사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상황. 그리고 많은 교사들이 느끼고 있는 이 무력감이 너무나 익숙해서... 실소가 나온다. 학교 측에서 공식적으로 내보낸 안내문과 언론의 물타기, 맘카페의 비난글들을 보며 인류애를 상실하는 건 나뿐일까. 이미 예상했던 바이지만 씁쓸하다...아주 많이. 진상규명을 촉구한다. 많은 교사들이 예상하는 정황이 포착된다면, 이제는 그 어떤 영광도 용서도 없을 일.


유명을 달리한 것은 그 꽃 같은 한 생뿐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안위만을 지키기 위해 비겁한 입장발표를 내놓은 선배님에 대한 존경(당신의 자식일이었다 해도 같은 대응을 했을까), 우물 안의 개구리인 나에게 세상의 눈과 귀가 되어준 언론에 대한 신뢰(아님 말고 식의 보도와 배후가 궁금해지는 기사들, 그대들은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지), 그리고 어찌 되었든 다가올 이 나라의 미래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 미래를 과연 축복할 수 있을지.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성장하면, 반드시 부모들에게 돌아갈 일이다.) 자기 자식 받을 상처가 두려워 화환과 꽃다발을 멈춰달라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역사가 될 것이라 함께 애도하고 가르쳐 주셔야죠. 어머님.



탈출하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교사로서 가진 일말의 사명감으로 교실을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이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혹시나 아이들과의 추억이 서려 있는 그 교실을 차마 떠나지 못하셨을까, 마음이 아린다. 선생님, 선생님 잘못이 아닙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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