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난중일기 01화

아들을 위해 매일 밤 기도합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야가 제 인생의 등골브레이커는 되지 않게 해 주세요.

by 세일러 문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큰 아이 영어화상수업 시간에 임박하여 노트북을 찾는데, 있어야 할 자리에 노트북이 없다? 마침 아들은 학원에 가 있었고 딸과 둘이서 기억을 되짚어 노트북을 사용했던 공간들을 샅샅이 뒤져보는데... 없다. 노트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질 않는지... 어쩐 일로 스스로 자겠다며 안녕히 주무시라 굿나잇 키스를 하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노트북은 아들의 잘 정리된 침대 베개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전쟁의 서막이 열리고야 말았다.




엄마의 직감은 여자의 직감이 업그레이드되어 90프로 이상의 적중률을 보이며 꽤 괜찮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어 전원을 켰다. 최근 검색 기록을 살펴보니 오후 11:12 무료 온라인 게임 검색 심장이 꾸물텅하더니 쿵, 배꼽 아래로 떨어진다.


아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문득문득 와다다 달려와 "엄마 사랑해, 쪽!" 사랑을 고백하고 자기의 시간으로 돌아가던, 네 살 때까지 '엄마'가 장래희망이었던 다정한 아들이었다. 이제 엄마 몰래 작정을 하고 게임을 하다니 아들, 니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 있니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를 2초 정도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검색한 키워드가 무료 온라인 게임이라니, 현질을 했다가는 하늘이 두 쪽이 날만치 극대노할 엄마를 생각하긴 했나 보다,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엄마를 닮아 쫄보인 연년생 남매는 혼자 자는 것이 무섭다 하여 아직까지 같이 방을 쓴다. 2층 침대에서 누나가 잠이 들길 기다렸다가 몰래 노트북을 켜고 달콤한 시간을 보냈을 테지...오늘 밤도 분명 잘밤 인사를 하고 들어가 쫄깃한 심장으로 베개 밑에 손을 넣을 테지? 현장을 검거할 것인지 죄를 고할 기회를 줄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살짝 남편에게 이 사건에 대해 기척을 주고 귀가한 아들을 맞는다.


"엄마, 오늘도 퍼펙 맞았어요~~." 잡았다 요놈.


퍼펙의 보상 20분 게임을 할 요량으로 즐겁게 귀가한 아들에게 묻는다. 별님이 너 엄마한테 뭐 할 말 없니? 싸늘한 엄마의 온도를 캐치한 세심한 아들은 굳는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릴 테지. 둥그런 테이블에 셋이 앉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들. 너에게 죄를 고할 기회를 한 번 줄게. 얘기해. 무쌍의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생글생글 웃으며 삶의 기쁨을 발사해 주던 예쁜 눈이다. 붉다. 몇 시간을 했을까. 울어서 충혈되는 건지 쾌락의 업보인지 모를 눈을 보니 마음이 약해지려 하다 마음을 다잡는다. 엄마를 생각해 밤을 꼴딱 새우진 않고 4시간 정도 게임을 하고 잤다며 진실을 고하는데, ~~하다 이새끼. 근엄한 엄마와 고민하는 아빠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야 하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 자꾸 웃음이 샐 것 같아 부산하게 움직이며 시선처리를 하길 여러 차례. 이제 아들에게 어떤 형량을 주어야 마땅한지 생각해보자 한다. 5분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하는데 침묵의 시간이 참 길게만 느껴진다. 남편이 무게를 잡고 입을 떼려 하자, 아들이 다급하게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한 걸 알아요. 벌을 줄게요. 앞으로 한 달 동안 어떤 기기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으엉어엉ㅇ엉엉."


어머나 세상에? 일주일 정도 금지하려 했는데, 한 달이나? 그렇게 아들은 12일째, 금욕생활을 하고 있다. 일주일 째 되던 날 그래도 이제 할 일을 잘하고 있고 앞으로 잘할 것을 믿고 금지를 풀어주겠다 했더니만.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겠다며 한 달의 금지 약속을 지켜보겠다 한다.




열한 살, 한창 놀고 싶고 게임도 많이 하고 싶을 나이이다. 특히나 남자들에게 게임이란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무엇, 이라는 것을 남편을 통한 십팔 년의 경험치로 익히 알아왔다. 부전자전이라고, 아이가 유치원 때 브롤이라는 게임을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곁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환장을 하는 아이가 되었던 일은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이 아이는 자극에 취약한 아이로, 매체를 접하는 시기는 최대한 늦춰야 하겠다 판단했다. 스스로를 제어할 능력이 될 때까지는 강렬한 자극을 주는 매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할 것. 팽이 접기 비행기 접기 등 종이접기를 하고, 축구공 야구공을 가지고 나가 놀았다. 바닷가에 나가 일렁이는 파도와 술래잡기를 하고, 소나무 숲에서 솔방울 야구를 했다. 나름 즐거웠지만 꽤나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었다. 그렇게 살았건만,,. 비장의 게임 카드를 꺼낼 일이 생겨 버렸다. 아들의 영어학원에서 매일 영어단어시험을 보기 시작했던 것.


매일의 단어시험을 엉망으로 봐오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녀석은 학업에 애상도 열정도 없다. 전직 교사의 자식객관화는 냉철한 편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무수히 꿈과 용기를 주었던 나의 업보였다. 본인은 열심히 했다고 개떡 같이 말해도 엄마의 직감은 꽤나 대단한 능력을 갖추어 그렇지 않음 (대충 외우고 대충 시험을 보았음)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아들의 영특함은 이미 외가에서 명절 이틀 만에 온갖 tv 채널과 편성 시간까지 줄줄 외우는 천재성으로 증명되었던 터, 내가 너를 안다. 퍼펙트를 맞을 때 20분의 폰 사용시간을 주겠다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죽기 살기로 외우고 퍼펙트를 맞아 온다. 이느므시키. 주말의 경우,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전제 하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게임 및 티비시청을 할 수 있는데, 안다. 나는 매체 허용에 박한 엄마다. 알지만 계속해서 그럴 예정이다. 영어단어 시험과 맞바꾼 게임시간으로 어쩌면 이미 예정되었을 전쟁.


그렇게 다시 매일 밤 기도를 시작했다. 아들을 위한 기도. 아들을 품에 안고 누워 눈을 감고 등을 쓰다듬으며 기도를 시작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 별님이가 엄마의 신뢰를 저버리는 죄를 저질렀지만 별님이를 사랑합니다. 부디 별님이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와 기꺼이 그른 일들을 행하지 않는 용기를 주옵소서. 신뢰를 쌓는 것은 어렵지만 한 순간에 신뢰를 잃을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시고, 살면서 중요한 것들을 잃지 않도록 이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옵소서. 게임이 하고 싶은 이 아이가 엄마의 등골브레이커가 되지 않도록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옵시고, 멋진 자리에서 스스로를 제어하며 건강한 게임 생활을 할 수 있는 무한의 복을 주옵소서. 그리고 늘 기도드리지만 별님이가 도파민에 중독되지 않고 팝콘브레인이 되지 않도록 아버지께서 별님이의 곁을 지켜주시옵소서.


엄마의 기도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을 예측했던 2014년, 아들의 첫 번째 생일을 기념했던 편지,




+ 에필로그


저는 아이들의 팝콘 브레인과 도파민 중독이 진심으로 두려워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고, 마음 상태와 생활에 대한 근황토크를 하며 엄마가 왜 이렇게 제한할 수밖에 없는지 세뇌에 가까운 이해를 시키고 있는데 알랑가 모르겠습니다.


팝콘 브레인 : 첨단 디지털 기기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팝콘처럼 곧바로 튀어 오르는 것에만 반응할 뿐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느리게 바뀌는 진짜 현실에는 무감각해지는 현상.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도파민 중독 : 도파민은 중추신경계에서 형성되는 신경전달물질로, 뇌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쾌감이나 즐거움 등과 관련된 신호를 전달한다. 도파민이 적게 분비됐을 때 이는 기분을 좋지 않게 하는 우울감으로 연결되며, 반면 도파민 분비량이 과도해지면 조증이 발생한다. 충동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을 계속 자극하면서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다양한 중독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최근 숏폼과 같은 짧은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도파민 중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 출처 : 하이닥 ]




2020년 11월, 생애 첫 게임을 시작한 1학년 아들의 생일을 기념했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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