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난중일기 04화

더는 미룰 수 없는, 내 아이의 성교육

정자와 난자는 말이야,

by 세일러 문


딸아이는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을 앞두고 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제 몸보다도 큰 가방을 메고 입학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6학년이라니 감개무량하다. 시간은 자비 없이 손을 끌어당기며 달리기만 하니 마음이 바쁘다. 조금만 더 천천히 가주면 좋으련만.

한눈에 보면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딸아이에게서 어딘지 모를 여성스러움이 풍긴다. 작년에는 고학년 범주에 들어선 기념으로 다가올 여자의 일생에 관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첫 생리를 앞둔 너에게 책을 읽기도 하고, 곧 쓰일 날이 있을 생리 팬티를 주문해 넣어 두었다.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생리가 터질 것을 대비해 생리대 착용법도 알려주고 연습도 해보았다. 엄마의 대자연 주기를 오롯이 노출하며 아이에게 펼쳐질 여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며 보낸 작년.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가끔 첫 생리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을 뿐,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멈추어 있다.





"지난주에 중학교 1학년 아이 포경수술을 해줬는데, 그 녀석이 자기의 고추가 큰 편인지 작은 편인지를 묻는 거야. 그래서 목욕탕에 가거나 화장실에서 보면 어느 정도는 알 텐데~ 그런 건 왜 묻는 거냐, 여자 친구는 있니? 물어봤더니, 있었다가 헤어졌다고 하는 거지. 왜 헤어졌냐 물었더니, 여자친구가 성관계를 하자고 해서 헤어졌다는 거 있지?"


"말세다. 말세."


"근데 그러는 거지. 요즘 5, 6학년이면 하는 애들도 많다고."


아버님은 작은 시골 병원의 외과의사이시다. 그 시절 아버님의 손에 다시 삶을 얻으신 분들의 일화들을 들을 때면 내 가슴이 다 뭉클해지곤 했었다. 지금이야 작은 동네의 주치의로 진료과목을 불문하고 단골 환자분들의 복합적인 건강 자문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계시지만, 서젼으로서 날마다 피를 보지 않을 수 없으시다며 여전히 간단한 수술들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날마다 고래를 잡고 계시는데, 그날 고래의 주인님은 아버님을 비롯하여,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우리 가족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망할. 눈에 넣으면 조금 아플 것 같은 내 새끼들이 5, 6학년이다. 5, 6학년이 어쩌고 저째? 그 동네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 친구들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믿고 싶지만,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들어왔던 터라 강 건너 불구경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 충격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더는 미뤄둘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다가 루루의 본격적인 발정기가 시작되었다. 양소리 비슷한 요상한 소리를 내며 자세를 낮추고 꼬리를 3시 방향으로 젖히는 루루. 너 참 낯설다.


"루루가 왜 저러지?"

의아해하는 아이들에게 당황스러움을 들킬 새랴, 최대한 태연한 연기를 선보였다.


"루루를 축하해 주자. 루루의 몸도 엄마가 될 준비를 마쳤나 보다."

체중 미달로 중성화 수술을 두 번이나 미뤘더랬다. 아이의 첫 생리가 걱정스러운 만큼 루루의 발정기도 걱정스러웠는데,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둘째는 "그럼 우리 집에 아기 고양이가 생기는 건가?" 하고 있고, "수컷 고양이를 만나야 루루가 임신을 하지." 첫째는 시크하게 대답한다. '너, 설마 다 알고 있는 거니?' 엄마의 낯빛이 흙빛이 되려는 순간,

"근데 엄마, 정자하고 난자는 도대체 어떻게 만나는 거예요?"

천진난만하게 장녀가 묻는다. 그렇다, 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올 것들은 어찌나 잘 오는지... 자꾸만. 기어이. 오고야 만다.


"햇님이는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날 꺼 같은데?"

연기대상감으로 1도 당황하지 않은 것 같은 태연한 연기를 해냈다. 잘했다, 나 자신.

"공기 중에 떠다니다 만나나?", "포자도 아니고~.", "전류가 흐르듯이 손으로 통하나?"

연년생 남매 나름의 가설들이 오가다 일제히 엄마를 바라본다. 정녕 탄생의 비밀을 밝혀야 할 때인가.


"있잖아,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진실한 사랑을 해."

오랜만에 최고의 집중력을 보이는 남매. 나 지금 떨고 있니....

"진실한 사랑을 하면.... 삼신할매가."


"아, 엄마~. 또 삼신할매 얘기."

여지껏 돌려 막은 삼신할매가 통하지 않을 때인 것도 같음을 알면서도 삼신할매의 아이 점지 얘기를 하다가


"정말 궁금해?"

라고 묻자, 두 눈을 똘망똘망 깜빡이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궁금하면 오백 원의 꽃거지 유머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기에 심심한 농을 던지지 못하고,


"궁금하면..........60초에 공개됩니다. 급똥급똥."

걸음아 나 살려라, 최고의 안식처 화장실로 도망쳤다는 그날의 이야기.





탄생의 비밀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중학교 가정 시간이었다. 친절한 가정 선생님께서 칠판에 그려주신 그림은 사실화에 가까웠고, 그것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던 지라 세상의 어른들에게 아무도 모를 배신감을 홀로 꼈더랬다. '아름다운 성'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는 이가 없었고, 그런 성교육 경험의 부재와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금기시되는 문화권에 살고 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성'은 여전히 공포와 두려움의 영역에 있다. 특히 내 아이의 성교육은 더욱이 그렇다.


더는 미룰 수가 없는 내 아이의 성교육으로 고민이 깊다. 어느 만큼의 수위로, 어떻게 잘 알려주어야 하는지 부단히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곧 있을 그날을 준비한다. 부디 나의 아이들이 올바른 성의식을 잘 키워가고,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진리'를 생성하는 사랑을 하기를, 그래서 삶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서로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일치감, 친밀감이며 이것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뇌의 부위가 아니라, 감성적인 부위의 공명을 통해 형성된다.
변연계의 공명은 단순히 정신적으로만 교감하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체온, 심장 박동, 냄새 등 존재의 모든 것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상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감성적인 사람이 (말하긴 뭣하지만) 섹스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아이가 활성화된 변연계로 발랄한 메타포를 만들어 멋진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철학자 바디우가 말한 대로 '진리'를 생성하는 사랑을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삶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 양육의 최종 목표다.

한귀은 작가님의 하루 10분 엄마의 인문학 습관 中


처음으로 멜로를 경험한 햇님이 다섯 살 생일의 일기. 엄마는 간질 간질, 아빠는 질투의 화신.




오늘 막내는 중성화 수술을 받고 왔답니다. 간병하느라 연재 지각했지만, 모두 재우고 막차 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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