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난중일기 03화

꼬치는 사랑을 싣고

며느라기 십삼 년차, 가족의 의미

by 세일러 문

가을 결혼식을 올린 새댁은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추석을 쇠러 아버님의 고향에 갔다. 아버님 육 형제 삶의 터전이었던 온양. 명절 음식 장인이신 어른들이 많이 계셨기에 새댁의 준비물은 단지 최상의 컨디션과 앞치마, 고무장갑뿐이었던 시절... 3대에 걸친 서른 명의 가족들 식사가 끝나면 비장한 각오로 식기를 치우고 닦는 설거지옥에 입장했다. 그 시절, 추석에도 설에도 명절이 기다려졌을 때도 그렇지 못했을 때도, 낯선 환경에 고무장갑과 우리 어머님이 내 곁에 가장 가까이 있어 주셨다. 중간중간 맛난 음식도 입에 쏙 넣어주시고, 우리 며느리만 고생하는 것 같다고 외출 심부름도 시켜주셨던 어머님. 그런 어머님께서 큰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여생은 소풍처럼 사시겠다며 떠나셨다.




결혼하고 5년은 대가족이 모여 북적북적 명절을 보냈었고, 어머님의 결단으로 5년은 어쩌다 우리집 맏며느리로 홀로 명절을 보낸 셈. 음식을 준비해 아버님과 아가씨를 집에 모시고 조촐히 명절을 보냈다. 일 년에 딱 두 번이니 가족들을 위해 이 정도도 못하겠냐며 기쁜 마음으로 장을 보고 음식을 했다. 어찌저찌 명절을 보내고, 식기들의 물기를 닦아 찬장에 넣으며 세탁해야 하는 이불더미들을 들여다볼 때면, 손목이 시끈 시려왔다.


새 가족이 들어온 작년부터 그래도 명절을 비롯한 기쁜 날들을 함께 보내자는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리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도 즐기는 명절이 된 것이 정말 꿈만 같다. 어머니와 아가씨, 며느리가 음식을 몇 가지씩 전담마크하여 보내는 세 번째 명절이다. 이번 명절 나는 전과 갈비 담당. 어머님은 떡만둣국과 반찬, 물김치, 아가씨는 잡채 담당. 암유암유, 며느라기 십삼 년차는 눈 감고도 뚝딱뚝딱 만들어 갑니다.


꼬치에 들어갈 고기 양념을 해두고, 아버님 좋아하시는 동태전, 해물동그랑땡을 지글지글 부친다. 포도씨유와 올리브유로 주로 음식을 해 먹지만, 전은 고소한 콩기름이 진리인 것 같아 넉넉히 두른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깻잎 크래미전은 상차림에 색감을 살리는 효자 아이템으로 손쉽게 후르륵 부친다. 우리 가족 최애 정성 가득 꼬치전은 나의 명절음식 시그니처 메뉴이다. 재료들을 비슷한 길이로 자르고 단단한 단무지옆에 부드러운 맛살, 우엉, 쪽파와 새송이버섯을 꼬지에 차례로 꽂아 계란물에 입혀 부쳐준다. 밀가루가 데드라인을 넘긴 상태로 있었기에 과감히 생략. 밀가루의 부재로 꼬치가 생각보다 계란옷을 입지 않아 아쉬웠지만 재료들의 조합만으로도 얼마나 맛있게요~ 설 연휴 전날 이미 명절 음식 준비를 각기 마쳤으니, 연휴의 시작과 동시에 명절을 즐기는 일만이 남았다.





쏟아지는 오후의 빛에 간만에 재회를 하신 어머님, 아버님의 흰머리가 반짝 빛난다. 두 분의 머리가 언제 저렇게 세셨을까, 싶어 뭉클한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른다. 단단했던 결단도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조금 옅어졌으리라. 아이들은 자라 어른들과의 대화에 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옆에 앉은 남편 눈가에도 주름이 깊다. 우리도 나이를 먹고 있구나 매일매일 실감하며, 살아 숨 쉬는 지금에 감사하게 된다.


구정 설날을 맞아 정성스레 준비해 온 음식들로 한상을 차려 떡국을 맛있게 먹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옛날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가, 늘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안아주며 인사. 봄에 만날 새 사람을 기대하며 또 서로의 시간 속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서로 할퀴고 상처 줬던 날들이 분명 있었을 테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 감싸 안는 오늘, 새삼스레 가족의 의미가 스며든다. 나이를 먹어 성숙하고 있는 것인지, 성숙하기에 나이를 먹는 것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눈도 애틋하다. 잘 살아왔고, 잘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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