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캐나다
6월에 시작된 두 아이들의 첫 캐나다 여름방학은 9월 5일 개학을 하면서 드디어 끝이 났다. 개학하기 며칠전 이사까지 한 터라 집은 여전히 난장판인 가운데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까다로운 통학길을 대비하고자 등교 하루 전 급하게 새 자전거 세 대를 구입했다.
자전거 통학 연습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 자전거 뒷바퀴 체인에 문제가 생겨 구입한 상점으로 다시 가서 교환하고 다음날 아침 드디어 첫 자전거 통학을 하게 되어 신이 난 아이 뒤에서 혹시나 중간에 길이라도 잃을까 봐 따라가던 남편의 자전거 뒷바퀴에 둘째 아이 자전거와 똑같은 문제가 생겨 이제 10살 둘째 아이 혼자 자전거로 학교까지 보호자 없이 보낸 간 큰 짓을 저질렀다.
아이의 성장은 예상치 못한 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며 마음 한 구석을 술렁거리게 한다. 따박따박 말 대답하고 쿵쾅쿵쾅 온몸의 체중을 실어 바닥을 뒤꿈치로 일부러 더 찍는 듯 온몸으로 짜증과 화를 내며 네 방으로 가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방문 쾅 닫고 자기 방 들어가 안 나오며 부모 분노 게이지 상승 시키는 걸로만 머리 굵어진 걸 보여 주는것은 아니다. 두 아이 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의 난이도가 점차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나의 구린 방향 감각과 타고난 길치 유전자를 절반이나 물려받았음에도 길거리 도로 표지판에만 의존해 무사히 혼자 학교에 도착하고, 집에 올 때는 두어 번 정도 헤매고 좀 당황했지만 여차저차 20분 걸리는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려 집에 도착해서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잡초처럼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구나 싶어 흐뭇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직 4학년이겠지만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년제가 한국과는 달라 5학년과 6학년이 한 반에 섞여 있는 시스템이기에 아직 내 눈엔 덩치만 큰 굉장히 어설픈 10살 꼬맹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뒤로한 채, 둘째 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나이 지긋한 남자 담임 선생님 신상을 본인 역량껏 최대한 탈탈 털어와서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김밥이라며 대다수의 캐나다인들처럼 스시라고 하지 않고 김밥이라고 제대로 발음했다며 선생님 자랑에 열을 올렸다.
거의 매일 보던 앞집 그녀를 더 이상 그렇게 자주 볼 수는 없게 되어 서운 하지만 새로 이사 온 동네에 같은 초등학교 같은 학년 여자 아이를 키우는 앞집 그녀의 친구가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동네 지리도 익힐 겸 저녁 산책을 나섰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분을 쌓아둔 터라 집 앞인데 잠깐 인사하러 왔다니 반갑게 맞아주는 앞집 그녀의 친구 역시 영국인이다. 방학 끝나기 이틀 전 영국에서 돌아와 시차로 인해 굉장히 피곤해 보였지만 길거리에서 수다는 그칠 줄 모르고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아니었으면 길바닥에서 계속 떠들 뻔했다.
집주인인 친구가 지하실에서 살고 세 들어 사는 우리 가족이 1층과 2층을 차지한 채 집주인 전 여자 친구가 두고 간 개를 같이 키우며 공동 육아를 하게 될 새 집에서의 일상이 기대가 된다.
70년 된 집에서 살다가 준공된 지 7년밖에 안 된 새 집으로 이사오니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넘어온 것 같다. 10여 년간 같이 살던 애인과 결혼해 가족을 이루려는 희망을 담아 지은 이 집은 설계와 인테리어에 직접 영향을 끼친 전 여자 친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헤어진 지 2년이 지나도록 과거에 파묻혀 우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집주인의 관리소홀로 언뜻 보면 깨끗한 이 집은 소소하게 참으로 더러웠다.
이번 생에 과연 내 집 한 칸 마련이 가당키나 할까 싶은 없는 살림살이에 참으로 과분한 집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 집인 양 하루 종일 쓸고 닦고 켜켜이 쌓여 있는 해묵은 때를 벗기며 청소요정으로 등극해 잔뜩 이 집에 애정을 주고 나니 집이 번쩍거린다.
애정을 받으면 사람이고 집이고 반짝거리며 윤기가 난다. 집주인과 공생하며 대형견 한 마리와 대형견스러운 딸 하나 중2병 초입인 아들 하나 공동육아 일상을 기록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