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20230311

에드먼턴, 캐나다

by Martine sk Mardres

에드먼턴 다운타운 도서관에서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도서관에 있던 예전 책을 정리해서 일반 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새로운 책을 들여놓을 자리를 만든다. 평소 책을 자주 읽는 사람들은 배낭까지 가지고 와서 저렴하게 파는 책을 사서 쟁여놓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한국어 책은 속독을 하는 편이라서 500페이지 넘어가는 긴 책이라도 마음먹고 시간을 낸다면 하루 안에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는데 영어로 된 책은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읽다가 내려놓은 후 다시 읽으려면 앞 내용이 생각이 안 나서 또 돌아가서 처음부터 읽기도 해야 해서 재미가 반감된다. 사전을 찾기도 해야 해서 시간은 더 지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욕심을 부리는 편이라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자꾸 사들이게 된다. 일단 사서 책장 안에 있으면 한 두 페이지라도 읽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든다. 그게 어딘가. 티끌 모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두 페이지가 되고 그러다 보면 다 읽기도 한다. 한 권 살 가격에 운이 좋다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인기작이었던 책을 이왕이면 저렴하게 여러 권 살 수 있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도서관 지하 강당에 자원 봉사자들이 장르별로 구분하고 정리하며 사람들이 구매해서 빈 매대는 끊임없이 계속 채워 넣기 때문에 계속 빙빙 돌면서 둘러보다 보면 계속 새로운 책이 들어오기에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식료품 쇼핑을 할 때 다른 사람들 장바구니에는 뭐가 들어 있나 다른 사람들은 뭘 사나 흘끔흘끔 보기도 하듯이 타인의 독서 취향을 몰래 슬쩍 훔쳐보는 은근한 즐거움은 어디가서 대놓고 뻔뻔하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사람 나말고도 있을꺼 같아서 딱히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할리데이비슨 가죽 재킷을 입고 부스스한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오래되어 색이 바래가는 타투가 슬쩍 보이는 손목, 희끗한 수염이지만 나름 정갈하게 잘 다듬어 한 껏 기른 할아버지가 요란한 표지의 로맨스 소설을 당당하게 들고 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좋은 구경이다. 귀엽기까지 하다.


비영어권 도서에 당당히 자리 잡은 한국 동화책 중에 작가 이상의 유일한 동화책인 1937년 발표된 '황소와 도깨비'가 눈에 띄어 둘째 딸에게 읽어 주었다. 둘째 딸도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고 싶은 책을 잔뜩 쟁이고 나도 둘러보다가 어릴 때 손에 땀을 쥐고 두 눈을 질끈 감아 가며 보던 외화 V의 소설판을 발견해서 남들이 채가기 전에 얼른 움켜쥐었다. 솔직히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책이지만 내 눈에 띄어서 간택된 오늘의 보물찾기 수확물을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간식으로 쥐 한 마리 통째로 삼키던 다이애나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떠올릴 만큼 충격적이었는데 책에서 이 장면을 찾아볼 생각에 들뜬다.


가격은 단돈 1달러! 오늘의 득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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