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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tine sk Mardres Apr 22. 2023

#97 20230419

에드먼턴, 캐나다

남편이 즐겨가는 슈퍼마켓 노프릴에서 용량대비 가격이 싸다고 냉큼 집어온 어마무시하게 커다란 햄 덩어리를 도마에 올려 두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4.46킬로그램에 14.72달러, 1킬로당 3.3달러 가격이면 100그램당 33센트라니 정말 가성비 끝내주는 햄이다. 물론 중간에 커다란 뼈가 있고 잘라 놓지 않은 덩어리 고기를 용도에 맞게 썰고 하는 내 노동력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가격이긴 하다.


가공식품 햄, 소시지 종류가 몸에 좋지 않다고 애들한테 먹이지 말라고 누누이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왔기에 자주는 안 사주는 편이었는데 여기 캐나다에는 소포장된 한국식 가공햄이 눈에 띄지 않아 사고 싶어도 못 사는 형편이다.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안 먹어왔던 과거지사와는 별개로 없어서 못 먹는 형편이 되니  아이들한테 가공식품 먹이면 어떡하냐는 마음의 소리는 잠시 무시하기로 한다.


돼지 뒷다리살을 햄이라고 하는데 무릎 뒤편을 일컫는 오금, 오금이 저리다 할 때 그 오금을 햄스트링이라고 한다는 걸 생 햄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다가 우연치 않게 최근에 알았다. 햄은 잠봉, 하몽, 프로슈토 등등 이름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커다란 덩어리 고기를 소금물에 절였다가 훈연해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그래도 왠지 잠봉뵈르, 멜론을 휘감은 프로슈토 이러니 뭔가 더 낯설어 보이는 게 여행지에 온 듯 설렌다.


여하튼 내 눈앞에 무시무시한 햄을 두고 그  끝트머리를 살살 잘라 내려 칼을 들이대자마자 뼈에 탁 걸린다. 중간에 얼마나 육중한 뼈가 자리 잡고 있으려나 한숨이 나온다. 살이 많아 보이는 반대쪽에서 시작했어야 하는데 일이 커질 것 같아 뾰족한 부분부터 살짝 잘라내려고 했다가 이지경이다. 뼈 주변으로 후벼 파듯이 거의 살점을 쥐어뜯어 내다시피 발라내고 나니 하이에나가 먹다 남은 뼈가 드러난 동물의 사체를 보는 것 같아 당분간 고기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할 것 같다.


누구나 알만한 친숙한 대기업 로고가 붙어 있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잘 포장된 가공육을 보고 있으면 동물의 살점을 가공한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아 보존료, 색소, 화학첨가물 따위는 나 몰라라 하며 별생각 없이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와 별반 크게 다르진 않지만 가끔씩 이렇게 한 번씩 뼈에 붙은 고기를 대할 때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매번 식료품 구입할 때 빼먹지 않고 갈아놓은 고기나 집어 드는 주제에 할 생각은 아니지만 육가공품을 대체할 단백질 식품군에 대해 계속 탐색하고 새로운 식자재들을 열린 마음으로 시도해 보고 적응해 나가며 육식을 줄여볼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다.


병아리콩을 한동안 많이 먹었는데 방귀가 너무 많이 자주 나와서 잠시 쉬고 있다. 해물은 죄다 냉동이라 비리고 상태도 좋지 않고 종류도 많지 않으며 두부도 생각보다 비싸서 슬프다. 대체육이라고 파는 식물성 고기는 진짜 고기 보다 더 비싸고 아직까지는 맛이 너무 없다. 계란을 빼면 이제 단백질 섭취를 뭘로 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아오 먹거리 고민에 마음이 무거워지니 잠시 옆길로 새서 딴생각 삼매경에 빠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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