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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Robin Dec 16. 2022

이재 이야기

10.  모노크롬(Monochrome)의 세계

*

   이재는 언젠가부터 검정을 좀 멀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호불호와 좀 다른 개념인데 검정은 그녀와 가까운 거리에 두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재의 눈동자가 갈색이고 머리카락도 짙은 갈색이고 얼굴도 밝은 색이다 보니, 완전히 검은색이 그녀에게 와닿았을 때 어색했다. 

   검정보다는 짙은 회색이나 연한 회색, 그리고 흰색이 더 잘 어울렸으며 화장할 때 눈을 강조하려고 아이라이너도 짙은 고동색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검정은 이재에게 엄숙함을 요구하는 즉, 예의를 굳게 차려야 하는 장례식장을 가기 위해 차려입을 때가 아니고서는 자의적으로 검정의 옷을 입을 때도 잘 없었다. 


  몹시 추웠던 어느 이른 아침 출근을 위해 탄 지하철 내에서 문득 눈을 들어 본 풍경에 검은색 외투를 갑옷처럼 두르고 그야말로 무표정한 얼굴의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던 장면과 그걸 인식한 날 퇴근길에도 본 비슷한 장면이 이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이재는 의식적으로 검정 옷은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필요에 의해 구해 둔 몇 가지 정장류와 구두, 가방을 제외하고는 무채색이라면 회색과 흰색, 또 남색, 푸른 계열, 붉은 계열 갖가지 먼셀의 색상환에 있을 온갖 색은 사면서 검정에는 꽤 인색하게 굴기 시작했다. 

   한편, 이재는 사람들이 검정이 무난하다고 하는 표현에도 여전히 반대한다. 검정만큼 까탈스러운 색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재가 무채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흰색-회색-검정의 무채색 스펙트럼 중에서 검정에 대해서만 좀 엄격하다. 이재가 왜 그렇게 검정에 대해서 그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일까?


   독일의 심리학자, 사회학자이자 소설가인 에바 헬러의  <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라는 발칙한 소설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다가 그녀가 쓴 <색의 유혹>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검정에 대한 이재 자신의 거리감 내지 거부감을 이해하게 되었다. 


   에바 헬러가 검정에 대해 정의한 "종말, 슬픔, 부정, 비밀스럽고 내성적인, 더러운 그리고 나쁜, 불행"을 나타내는 색이라는 것을 읽고 이재의 내면에 깔린 검정에 대한 거부감의 근거를 읽어냈다, 특히 이재는 "종말"의 의미를 다룬 것에 대해 가장 크게 반응했는데 칸딘스키조차도 검정에 대해 


 "검정의 내적 음향은 가능성 없는 허무, 태양이 꺼진 뒤의 죽은 허무, 미래도 희망도 없는 영원한 침묵과 같다."


고까지 했으니 거기에 이재는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니까, 늘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을 출근길과 퇴근길에서 본 두터운 검정 갑옷을 두른 사람들을 보며 은연중에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까 되돌아본다. 


   에바 헬러는 위에서 언급한 부정적인 것 외에도 현대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찬양하는 색이 "검정"으로 우아한 색이라고 했다. 크리스찬 디오르, 지아니 베르사체, 이브 생 로랑, 칼 라거펠트, 도나 카란 같은 이들이 그렇게 말했음을 언급했지만 이재가 찾아서 편하게 입을 수 있을 정도의 브랜드가 아니니, 그 이름과 명성만큼이나 그녀에게는 검정이 거리감이 있던 셈이다. 



  **

  그랬던 이재가 데생을 하면서 무채색, 즉 모노크롬(Monochrome)에 새롭게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물론 모노크롬이 무채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재는 이해하고 있다. "단일한 색조를 명도와 채도에만 변화를 주어 그린 단색화"가 그 뜻이니, 무채색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저 기본 도형을 4B로 명암의 변화를 주는 수준의 이재에게 그 데생은 그녀만의 모노크롬 세계인 것이다. 검정이 단 하나의 색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점점 맞아가고 있으니,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재는 자신의 이름값(기쁨을 심는 사람)을 했다고 뿌듯했다. 


   먼지가 쌓여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는 에바 헬러의 책을 다시 들춰보니, 검정에는 모두 50가지가 있다고 하니, 너무 단순화하고 일반화해서 거부감을 갖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검정이 정말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재가 기쁨을 심을 수 있는 자신만의 검정을 찾아낸다면 더욱 좋을 듯싶다.




   며칠 전, 원반처럼 그려놨던 구(球)를 다시 테이블에 놓고 서툰 모노크롬의 세계에 빠져든다. 검정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니, 원반은 좀 벗어나는 것 같다.


   데생 강사가 잠시 그림을 바라보더니, 이런 말을 던진다.


   "지우개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흰색을 칠하는 도구처럼 생각해 봐."


   이재는 멍해진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림은 그 도구의 가치와 역할마저 새롭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검정에 이어 흰색 역시 색인가? 모노크롬의 세계란 참 끝이 없네.'

   고 생각하며 말을 듣기 전까지, 지우는 데에만 제한하던 말랑말랑한 그것을 쳐다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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