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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Robin Jan 03. 2023

이재 이야기

15. 뮤즈(Muse)와의 재회

 

*

   이재는 눈, 코, 입이 제대로 된 아그립파 석고상을 마주 보고 있다. 결국, 드디어는 왔구나 하면서. 원근법, 시점, 빛의 흐름 같은 기초를 다지면서 천천히 흘러서 그를 직면하려니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이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며칠 빈둥거렸던 어느 해에 복도 한편에 있던 아그립파 흉상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ㄷ"자 형의 우피치 미술관의 중앙 복도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대리석 조각의 진품과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본 아그립파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한참을 서있었던 기억과 겹쳐졌다.

아그립파 흉상,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석고상의 아그립파에서는 느끼기 힘든 위엄과 권위, 야망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서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해야 하나.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사무실이었던 복도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메디치의 카리스마도 아무렇지 않게 누르고 있는 듯했다.


   어깨가 뎅강 잘린 목 아래만 겨우 있는 석고상 아그립파는 적군에 잡혀 목이 잘린 장군 같다고 이재는 생각한다.



**

   배운 대로 2절지의 중앙을 '정하고' 형태를 잡아간다. 몇 년 전 만났던 위엄 서린 그를 옮겨오고 싶은 마음과 달리, 그런 의도는 전혀 없어도 이재의 손 끝에서 나타나는 아그립파 장군은 한껏 조롱받는 듯하다. 죄스럽지만 아직은 이재의 한계니까 이해하시라 중얼댄다.


   데생강사가 일어나보라 손짓에 일어난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측정하며 그리는 차이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보이는 것이 실제 보는 것의 차이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해.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니라는 거지. 데생을 하는 게 연필로 무의미한 선으로 면을 단순히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사물을 정확히 보려는 훈련이기도 해."


  이재는 그 말을 들으며 우피치 미술관 복도에서 여전히 위엄에 찬 아그립파와 석고 아그립파 사이의 차이를 인지했지만 정확히 본 것일까 되돌아본다.


  그냥 물체로 보고 2절지에 그럴듯하게 옮겨놓으려고만 한 것은 아닐까.  아그립파가 가진 아우라를 너무 단순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이재가  망쳐버린 아그립파의 인상을 데생강사가 대수술을 하듯 일부 살려놓은 것을 보고 집에 오며 이재는 그 순간 현재 그녀의 뮤즈(Muse)는 아그립파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현재 이재 앞에 덩실 나타난 듬직하고 묵직한 뮤즈 기꺼이 맞이한다.


   비록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서 여러 가지 학예를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이라 할지라도 21세기에는 젠더리스(genderless) 면 어떨까 이재는 편한 대로 우긴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가들은 예술  작품에 신의 영원한 지혜가 감추어져 있다고 믿으며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서 음악, 미술, 문학 등을 주관하는 여신인 뮤즈에게 호소하곤 했다 하니, 이재는 그녀의 뮤즈, 아그립파에게 호소하는 바이다.

 

  곧 이재의 뮤즈는 바뀔 테지만 당분간은 매달려본다.


  사랑은 변함없을 것을 맹세하지만 사소하고 치사한 몇 가지로도 비겁하게 바뀌기도 하듯이.


  이재가 바뀌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대의 바뀜으로 상처를 받기도 했던 것과 같이 지금 현재의 뮤즈는 곧 바뀔 것을 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실하다.


  그런데 아그립파가 살았던 시대에 그를 만났다면 그는 이재의 뮤즈가 될 수 있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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