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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Robin Jan 17. 2023

이재 이야기

19. 한 번이라도 아방가르드(Avant-garde) 한 적이

*


   가장 앞에 있는 것은 앞장선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불확실성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재는 돌이켜보건대, 앞장을 서는 편은 아니다. 다만 무리에서 약간 아웃사이더의 반골기질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위치 상, 상하보다는 좌우 끄트머리 어디쯤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서서 눈에 띄는 짓은 잘 안 하지만 무리들과는 항상 뭔가 약간씩 빗나가 있는 게 자신이다. 대세는 거스르지 않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확보했던 셈이다. 



   이를테면 이재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규율이 꽤 심했다. 지금의 학생인권에 비춰보면 죄악에 가까운 규율들이 천지였는데 이재는 그것들을 단 한 번도 성가셔한 적이 없었다. 

   특히, 매우 짧은 단발-귀밑 3cm-을 강요하는 두발 규칙은 외모에 대한 관심을 꽃을 피우는 나이에는 잔인한 규칙이어서 이재의 동기들은 귀밑 5~10cm 정도 길러서 두발 검사가 있을 때마다 목을 빼느라 난리를 피웠다. 당시 학생주임 교사의 두발 길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교복 칼라에 머리카락이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이어서 아이들은 학생주임이 앞모습을 볼 때면 머리를 뒤로 젖히고 뒷모습을 보면 머리를 숙여 누가 봐도 귀밑 10cm는 족히 넘을 길이를 3cm라고 우겨댔다. 

   학생주임도 두발 "단속"을 두 달에 한번 할 때마다 어느 때는 느슨하게 속아 넘어가기도 했던 것을 보면 나름 여고생들이 그 우스꽝스러운 안간힘을 귀엽게 봐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 무리들 속에서 이재가 한 선택은 3cm 이내로 자른 커트였다. 머리길이로 도저히 지적받지 않을 길이를 내내 유지했다. 그리고 그 길이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짓은 다했다. 그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자유였다. 안전장치는 그 3cm였다. 

  두발 단속을 할 때마다 이재는 매우 편안하게 그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학생주임이나 교사들이 머리는 '이재처럼'하라고 할 때마다 이재가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재에겐 가증스러운 규칙이었을 뿐인데 칭찬을 들었다. 


   그런 규율들을 이재는 꽤 영리하게 잘 활용했다. 규율을 부수지 않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놀았다. 요즘 말마따나 철저하게 시니컬한 "아싸"인데 겉으로는 "인싸"로 지긋지긋한 고교 시절을 보냈는데 이재가 경악한 것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교생활기록부에 적힌 글귀였다. 

  "타의 모범이 되는"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이재 자신이 한 짓거리들-두발 외에도-이 떠올라 양심에 좀 찔렸기 때문이었다.  이재는 다만 지적받지 않을 수 있는 기준과 그녀가 농락할 수 있는 기준 사이에 타협을 한 셈인데 그건 좀 미안했다. 그저 강제적이고 강요받는 규칙의 모순적인 습성을 일찌감치 알아챈 것치고는 기대한 적 없는 찬사였다.



    그래서 이재가 다행스럽다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녀의 부모는 이재의 반골기질을 억지로 꺾으려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재는 부모로부터 "하지 마", "안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그렇다고 마냥 허용적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부모가 이재에게 요구한 것은 그들을 '납득시킬 정도의 설득과 노력 그리고 대안'이었다. 애초에 설득이 자신 없는 일은 아예 이재 자체에서 삭제해 버렸다.


  따라서 이재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내부 부모님을 설득하고 납득시킨 후 이뤄진 일들이다. 외부와 부딪히는 경우 이재의 보호자였던 부모는 이재의 설득력을 근거로 그들을 이해시켜 주었다.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거친 결과는 이재를 자유롭게 했으니 가치가 있었다. 


  강제하고 꺾으려 드는 순간, 이재와 관계는 파국이다라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고 한 것은 그녀 엄마의 전언이 있었던 것을 보면 이재의 기질을 잘 파악한 부모의 현명함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재가 권위로부터 좌절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러니 "반항할 이유"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혹은 무엇을 위해 앞장서서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반항을 한 적이 없었다. 나름 자신 안의 공고한 자유 안에서 독특한 생각이나 행동을 누리고 살았다. 



**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이재는 가슴에 돌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그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심상치 않았는데 그 뜻은 이재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방가르드는 전위(前衛-앞에서 호위한다), 선두, 선구 등의 뜻으로 프랑스의 군사 용어인 '전위(부대의 전초로서 선발된 소수 정예부대)'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적으로는 좌익(左翼)과 같은 말로 특히 예술상으로는 인습적인 권위와 전통에 대한 반항, 혁명적인 예술 정신의 기치를 내걸고 행동하는 예술을 말한다. 

  이른바 이해 안 되는 괴상한 퍼포먼스, 난해하고 어지러워 보이는 그 시각적인 그림, 영화, 음악, 시, 글, 패션 같은 것들 모두 이재에게는 '아방가르드한' 어떤 것들이었다. 그것들 어디에도 실용성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실험적이고 혁명적인 행위에 실용성이라니, 참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이 우습다. 



  어찌 됐건 아방가르드는 앞선 간다는 의미다. 모든 불확실성 속에 앞서기 때문에 가장 먼저 얻어맞아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이다. 이재가 생각하기에 인습적인 권위, 강요받은 전통의 압박, 그 안에서 터질 듯이 감추어진 에너지들이 언젠가는 터지고 마는 것들이라 그것과 그녀와는 거리가 있었다. 차라리 아웃사이더라면 모를까. 


   그러나 삶이 항상 그렇게 흘러가기만 할까. 

  이재는 어느 때에 눈 떠보니, 그야말로 아방가르드 단어의 유래처럼 맨 앞에서 호위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투사'가 되는 것은 자고로 타고나고 본인의 의지로 되는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냥 삶이 그렇게 만들 때가 있음을 경험했다. 

  그 아방가르드한 시간 속의 이재는 매우 거칠고 반항적이며 '더럽게 말 안 듣는' 사람이었다. 반항심은 감추고 영리하게 굴던 사춘기 시절의 이재는 사라지고 그저 고삐를 풀어버리려 온몸으로 저항하는 말 같았다. 들판 속에 풀어놨을 때는 그저 풀이나 뜯고 나비를 느른하게 쳐다보던 말이, 고삐에 묶으려 하고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좁은 우리에 집어넣으려 할 때 반항하고 자해하는 말처럼 처절했다. 


  그 이후부터 이재는 투사가 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세상은 얼마나 잔인했을까 짚어보게 되었다. 투사가 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사람은 역시 자신이 겪어봐야 그 사정을 헤아릴 수 있음을 몸으로 배웠다. 


   예술과 삶은 그렇게 떼어놓을 수 없다고 이재는 생각한다. 그리고 돌고 도는 것이다. 아웃사이더였다가 아방가르드였다가 순응하는 사람이었다가 투사였다가, 순서대로 1등이었지만 방향을 반대로 하는 순간 꼴찌도 되는 것이고 45도로만 방향을 돌면 그저 모두가 평등하다. 

  그러니, 우월감에 빠진 인간들을 비웃어 주리라 이재는 이죽거린다. 

  '같잖은 우월감이 너 자신을 곧 시궁창으로 이끌 것이라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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