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만 치열했던 영업 이야기
‘영업은 상품이 49퍼센트, 사람이 51퍼센트이다.’
영업의 비법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타 브랜드보다 뛰어난 제품, 시장 점유율이 높고 가성비가 좋은 상품이라면 못 팔 이유가 없고 회사가 성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뛰어난 제품이나 좋은 상품을 가지 고도 판로나 마케팅, 홍보 등이 안 되어 죽을 쑤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탁월한 입심과 대인관계로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슈퍼 영업사 원이 있다고 해도 제품이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타 브랜드 보다 강점이 없다면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 요즈음 소비자의 마음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영업의 비법은 팔고자 하는 상품과 파는 사람의 완벽한 조화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주 쉽고 당연한 말을 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이런 완벽한 조건을 갖춘 회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나의 영업 이야기 중에 이러한 원칙을 극복한 사례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처음 내가 ‘캡스(CAPS)’라는 회사를 알게 된 것은 2003년이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지형은 IMF 이후 IT기업의 기술혁 신과 회사 자산과 비용처리의 아웃소싱이라는 선진 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인터넷이 생활의 중심이 되고 통제 수단이 되었다. 그러면서 개인 자산과 정보 보호의 필요성과 효율성이 비즈니스 의 화두로 떠올랐다. 보안 경비업체 또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 서 시큐리티 산업의 볼륨이 확대되어 가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 일 본 기업을 벤치마킹한 삼성그룹 계열의 세콤과 국내 토종 기업인 캡스가 시큐리티 산업의 1, 2위를 점유하고 있었다.
사업 확장으로 긴급 출동 건이 급격히 늘어나고 가맹점 순회 점검 및 설치 등 유지관리에 사용할 목적으로 차량 구매가 확대될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캡스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항상 그렇듯 무작정 나의 감(感)을 믿고 전화를 걸었다. 나의 소속과 전화를 건 목적(당신 회사에 관심이 많고 뭔가 좋은 파트너십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조금)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단,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나 관심도를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럴 경우에 만남으로 연결할 수 있는 팁을 주자면 처음 전화는 오전 10~11시와 오후 2~3시를 피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기업에서 집중 근무 시간이거나 회의를 많이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바쁠 때 누군지도 모르고 받는 전화에 친절을 베풀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판매나 할인 등 세일즈를 목적으로 하는 전화는 잡상인 프레임으로 묶여 무시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전화는 필요한 말만 하고 3분 이내, 상대방의 회사에 대한 적당한 관심, 만남의 여지를 남겨 둔 궁금함 정도로 하고 실질적인 약속을 잡는 게 좋다. 내 경험상 약속일과 시간은 상대방이 허락한다면 명확하게 하는 게 좋다. 대부분 업체 담당자는 첫 만남에 메모를 하거나 기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특정 요일과 시간을 명확히 하는 게 좋다. 혹시 잊어버리더라도 귀책을 업체에게 돌릴 수 있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가서 처음 만난 캡스 담당자의 인상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내공이 센 고수처럼 보였다. 특판팀에서 3년 정도 특수영업의 스킬을 배운 내가 봐도 담당자의 눈빛과 말투에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간파할 수 있었다. 캡스는 오토바이와 차량 200여 대를 직접 구매해서 출동 차량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최근 렌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비용처리 등 효율적인 차량관리와 현장관리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을 때였다. 특히나 2교대라는 업무환경으로 시동이 꺼지지 않는 현장 특성상 비용절감과 내구성을 다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구매팀에서 찾아 야 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2.0급 승용 차량으로서 LPG 모델을 겸비한 ‘매그너스’가 막 출시되었고, 소위 캡스에 제공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로서 시승 차량을 운영하면서 담당의 마음에 얻어 갔다.
캡스에 접촉한 지 6개월이 되는 시점, 드디어 초도 물량으로 매그너스 50대를 계약했다. 나의 첫 FLEET(대량판매) 물량이었다. 캡스 고유의 CI를 입힌 도색과 특수장치(무전기, 경광등, 금고 등)를 장착하고 태어난 나의 첫 작품. 잠실운동장 주차장에서 진행된 차량 인도식에서 전국에서 차를 지급받으러 올라온 현장 출동요원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차량의 특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영업에는 항상 변수가 따르는 법이다.
차량을 인도하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현장에서 클레임이 갑자기 쏟아졌다. 경쟁사 차량에 비해 주행 중 시동 꺼짐, 브레이크 밀림 등 현장의 클레임이 쏟아지면서 구매 담당자도 난처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안전과 직결된 사항이고, 특히 24시간 대기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사용하는 긴급 출동 차량이라 더더욱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우선 차량을 정비사업소에 입고해서 원인을 파악하려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AS 문제가 그렇듯 정비사업소에 입고하면 정비기술팀에서 일반적인 주행 테스트를 한두 번 해 보고 정상 수치 범위에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둥,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으니 알수 없다는 둥 황당한 솔루션을 내놓았다. 나는 우리 팀 최고의 AS형님과 함께 문제가 가장 심한 지사를 직접 찾아갔다. 해당 차량을 직접 운행하고 체험해 보면서 어떤 상 태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싶었다.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의 차량 운행자나 고객은 문제점을 설명하는 데 있어 추측이나 왜곡 또는 과장하는 경우도 있고, 운행 미숙이나 기능 인지가 부족한 경우에도 ‘문제’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모든 차량은 문제가 발생하면 계기판에 경고등(에러 메시지)을 띄운다. 어떤 메시지가 점등되었느냐에 따라 처방이 다르고 원인도 역시 다르다. 시동 꺼짐이라는 간단한 현상이지만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일 수 있다는 말이다. LPG 엔진 특성상 발생하는 역화 현상, 불완전 가속을 할 때 흡 입공기량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엔진부조화 현상, 엔진의 숨구멍 역할을 하는 스로틀 보디 센서 오류 등 정확하게 진단하지 않으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담당자인 나와 AS 팀장이 이러한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며칠 동안 지방의 지사를 돌면서 직접 문제 차량의 출동 요원과 차량을 몰아 보면서 그들이 말하는 문제의 순간을 찾기 위해 일부러 상황을 재연해 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차량의 문제점을 찾는 것뿐 아니라 현장 출동 요원들의 운전 성향과 습성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경비보안 업체는 타 업종보다도 차량 운행 조건이 가혹 하고 열악하기에 내구성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따라서 거기에 맞게끔 대응 방안을 짜야 한다. 이것이 며칠 동안 캡스 현장을 돌면서 느낀 나의 AS 대응 방향이었다. 그 후로도 캡스의 지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가 보지 않은 지사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많은 명함을 건넨 덕분에 많은 전화를 직접 받는 수고를 했지만, 어쨌든 캡스의 AS 솔루션은 빠르고 정확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 한 AS 솔루션이 전국 어디에서도 동일한 프로세스로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 덕에 우리 회사의 전국 AS 센터에는 캡스 차량 우선 점검반도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면 전국 어디에서도 쉽 게 협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1년여 시간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일군 성과였다. 차는 사람이 만들었기에 언젠가는 노후하고 때로는 결함이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느냐가 관건이다. 다행히 시동 꺼짐 문제는 개선 제품 이 나오면서 점점 잦아들었고 브레이크 밀림은 ABS 장치(브레이크 제동 중에도 핸들 잠김이 일시적으로 풀리면서 조향 능력이 생겨 2차 충돌 방지를 막는 제동 보조 장치)의 인지 부족 해프닝으로 파악돼 전국을 돌면서 ABS 홍보에 앞장섰다. 당시 ABS 장치는 자동차회사의 의무 권고사항으로 캡스에서도 이런 ABS 장치에 대한 홍보에 나서게 되었다. 브레이크 밀림도 도대체 얼마나 밀린다는 것인지 직접 체크하기 위해 정비기술 담당 직원과 캡스 출동 요원과 같이 ABS 장착 차량과 아닌 차량을 비교 시승하면서 그 차이를 직접 시연해 보았다. 결론은 뻔히 알다시피 제동거리는 분명히 ABS 차량이 짧았지만 제동 후에 출동 방지를 위한 이동거리를 감안해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것은 ABS 가 장착되지 않은 차량만 운행하다가 ABS 장착 차량을 운행하면서 느끼는 심리적 인지거리의 차이였다. 그 이후로 캡스와 나의 인연은 십여 년간 차량 오백여 대를 공급 하는 주요 거래처로 발전했고 개인적으로는 애증을 제일 많이 가졌던 업체로 기억된다. 그 애증 관계는 뒤에서 한 번 더 언급할 것이다. 세상에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영업 현장에서는 논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고 고민한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 내 차같이 생각하고 내 형제자 매가 타는 차라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풀리지 않을 문제는 없다고 본다.
판매에서는 제품이 49퍼센트 역할을 하지만 나머지 51퍼센트는 영업사원의 능력이 좌우한다. 누구나 100퍼센트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팔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대체할 수 있는 51퍼센트의 영업사원을 찾는 일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런 영업사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경험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