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한 Dec 28. 2022

영업 현장은 치열하지만  언제나 배울 게 있다

차갑지만 치열했던 영업 이야기

이십여 년 동안 영업 현장에서 많은 파트너와 동료를 만났다.

치열한 영업 현장에서 때로는 협력자로, 때로는 경쟁자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배우고 벤치마킹할 수 있었으며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업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이며 학습임을 알기에, 내가 만난 수많은 분 중 지(智), 덕(德), 용(勇) 면에서 많은 성취와 감동을 함께해 준 이가 많았다.

어느 분야에서나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은 감동과 신뢰를 준다. 내가 만난 삼성카드 김차장의 영업적인 감은 업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영업의 감’이라고 표현했지만 달리 말하면 위기상황에 대한 탁월한 대처능력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그와 여러 작품(영업에서의  대량판매)을 함께하면서 항상 두 수 앞을 내다보는 시각과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해 많이 감탄했다. 2015년 A담배 업체의 업무용 차량 렌트 입찰이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H사의 소형 해치백 모델을 대체하는 경쟁 입찰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크루즈 해치백 모델을 막 출시했고 차량 크기나 연비, 가격 면에서 모두 열세한 상황이었다. 어떤 전략으로 접근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던 나에게 그는 열세 사항을 우세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을 제안했다.

일단 업체 특성상 트렁크 부분을 훨씬 넓게 사용함으로써 크기의 우위성을 확보하고, 경쟁사 대비 연비가 떨어지는 부분은 가솔린 대신 디젤 차량으로 제안해 극복하자고 했다. 물론 가격 면에서 가솔린보다 디젤 모델이 이백여만 원 더 비싸지만 기존 가솔린 차량과 비교할 때 디젤로 전환하면 대당 유지비용을 3만~5만 원 더 절감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그래서 렌털비용 2만~3만 원 상승보다는 유지비 절감에 포인트를 두고  업체를 설득하자는 것이었다. 업체 담당자는 직원들에게 좀 더 큰 차를 준다는 이점과 약간이나마 렌털비용을 인상하기보다는 유지비용 할인을 더 크게 받아들여 서로 이익에 부합하다고 판단하면서 그 입찰을 극적으로 따낼  수 있었다. 차량 150대가 넘는 규모였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해당 모델의 디젤 판매가 없었던 터라 디젤 판매 확대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무리 없이 순항할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통찰력과 아이디어는 영업인에게 필수적인 요소이다. 타당한 논리와 전략적 아이디어만 있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기회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영업인은 서비스 마인드와 고객을 배려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노출되다 보니 친절한 이미지를 가져야 하고 을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 그러한 서비스 마인드 면에서는 내가 만난 대우 자동차판매 AS팀의 한 직장님이 매우 출중하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셨지만 그분이 보여 준 서비스 마인드는 그 분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훌륭한 표본이 었다. 내가 특판팀의 막내로 막 입사해서 좌충우돌할 때 그 형님이  AS 파트너로 항상 같이 다녔다. 당시에는 업체를 방문할 경우 AS 팀과 동행하는 것이 부서의 영업 방향이었다. 영업과 AS가 한 몸처럼 움직임으로써 대응 차원에서 차별화된 이미지와 신뢰를 주는 좋은 전략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러한 전략은 상호 보완적이면서 신참과 고참의 유기적인 결합에도 좋은 사례인 것 같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라고, 당시 과천에 있던 정부기관을 담당할 때 형님과 한 달에 두어 번 방문했다. 차량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업체는 아니지만 같이 업체를 방문하면 워낙 노련하고 인덕이 풍부해서인지 업체 분들이 나보다는 그 형님을 더 반겼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형님이 나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어 주는지 느끼지 못했다. 차량실의 계약직 운전사부터 정비고의 직원, 차량 담당자와 고위임원까지 그 형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형님이 이리도 인기가 좋은 게 그저 서글서글한 인상과 성실한 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었다. 나중에 우연히 그 형님에 관해 업체 분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았다. 내 전임 담당자가 워낙 이 업체를 관리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담당자와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업체에 방문해서 이곳저곳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차량 운행은 잘하는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살피고 물어보는 것, 우리 경쟁사의 차량이지만 문의가 오면 성실히 봐 주는 것, 주말이나 저녁에 긴급하게 연락이 와도 발 벗고 출동하고 챙겨 주는 마음 씀씀이. 이 모든 것이 그가 업체에 보여 주고 쌓아 두었던 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쌓아 둔 덕이 나의 영업에도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영업 현장에서 ‘영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사람, 하찮다고 알아주지 않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업체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챙기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차별은 하지 않는 진심을 가지고 영업에 임하면 되는 것이다. 누가, 언제 구매 담당자가 될지 모르고 사람의 지위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 그 형님을 통해서 나는 영 업에 득을 많이 봤다. 내 영업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그 형님의  후광 덕분이다. 형님이 떠난 곳에도 형님의 향기는 남아 있기 때문 이다. 확실히 영업은 덕을 쌓아 가는 일임을 그때 알게 되었다.

이전 02화 최고의 파트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