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만 치열했던 영업 이야기
지난 이십 년간 특판팀에서 근무하면서 차량 이만여 대를 판매한 것 같다.
한 해에 적게는 오백여 대에서 많게는 이천여 대가 넘는 판매 성과를 낸 적도 있었다. 단순히 수치상으로 대단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어떻게 그렇게 판매할 수 있느냐며 비법을 묻는 이도 있다. 영업 현장에서 많이 판매하고 실적을 내면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지표로 신뢰의 지속성을 말하고 싶다. 법인영업이라는 특성상 업무용 자동차의 구매 기준에는 적정 비용과 사용 적합성, 사용자의 선호 등 여러 가지 요건이 있다. 지금 소개할 이야기는 구매 담당과의 신뢰와 믿음이 어떻게 현장에서 역전될 수 있는 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사조그룹은 우리 식탁의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종합 식품회사이다. 흔히 참치만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지만 식용유와 어묵, 소스류 등 다양한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업체이다. 그 회사와는 십 년 전 신규 업체로 인연을 맺고 현재 업무용 차량을 세 번 교체하는 동안 매번 우리 회사가 만든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서두를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를 알아챘을 것이다. 역시나 처음은 쉽지 않았다. 동원과 오뚜기라는 경쟁업체속에서 사조는 선호도와 가격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인 안심 따개를 최초로 개발한 데서 보듯 항상 고객을 우선하는 기업 문화에 내심 한 번은 거래하고 싶은 좋은 이미지를 지닌 업체였다. 처음 구매 담당인 박차장을 만났을 때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비용을 절감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공개입찰로 차량을 선정할 것이며, 기존 직접 구매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월 렌털료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말을 듣고 우리차의 특장점을 떠올리며 어떻게 공략할지를 고민했다. 당시 여러 렌트사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먼저 사조에서 우리 차에 강한 선호도를 이끌어 내고 거기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렌털료를 제시하는 것, 이것이 중요 전략이었다. 첫째로 우리 회사의 스파크를 구매 담당자와 현장 직원들이 직접 시승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장기간 대여를 추진했다. 첫 시승차를 지사별로 돌면서 보여주고 타 보게 하면서 당시 경쟁차에 밀려있던 우리 차의 선호도를 올리고 현장과 밀착 관계를 갖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당시 만났던 현장 영업 직원 중에는 우리 차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혼재했다. 긍정적인 경우는 더더욱 확고하게 해 주고 부정적인 경우는 판촉물로 호의를 베풀고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또 선입견에 대해서는 논리적 반박으로 정면 돌파했다. 현장 영업직원들의 선호를 중시하는 담당자에게 이러한 활동의지는 좋은 피드백으로 작용했고, 평소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던 박차장도 점점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둘째는 병력 백 명보다 확실한 우군 한 명을 만드는 것이었다. 담당자와 6년간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데는 그와 취미와 성향을 공유한 게 바탕이 되었다.
당시에 나는 골프에 심취해 있었고 사조 담당자 또한 막 골프에 입문해 혼자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의 스윙 폼이나 자세에 대해 허물없이 말해주고 조언해 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한창 유행하던 스크린골프(일주일에 한 번꼴로 다니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스크린골프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 달에 한 번 퇴근 후 스크린골프장에서 만나 짜장면과 소주를 먹으면서 같이 골프도 치고 조언도 해 주면 좋을 듯싶다고 하자 그가 흔쾌히 동의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승부에 목매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법. 골프 모임 후 2차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한 선후배처럼 직장과 인생 고민을 허물 없이 나누면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로 승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차량 구매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솔직한 내 마음과 의지를 그에게 보여 주면서 좋은 점수를 딸 수도 있었다. 9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필드와 스크린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우정을 쌓아 가고 있다. 지금은 그 업계를 떠난 그 친구는 가끔씩 당시의 우리 만남을 추억하면서 그때가 자신의 스트레스와 진솔한 마음을 열었던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되는 것은 영업이라는 것이 그리 고상하면서 특별한 게 아니라 개개인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때로는 단순하면서 소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영업방식이 술과 운동 등 접대 문화가 다수일 때였다. 그러나 소소하고 유익한 이러한 관계는 더 큰 영업 효과를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고 자부한다. 흔히 영업하는 사람들을 카멜레온이나 팔색조에 비유하곤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계산적이고 속물이라며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영업을 동경하거나 영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영업은 남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남에게 맞추는 직업이다. 유연한 사고와 능동적 에너지,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쉽게 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사조그룹은 나에게 최고의 파트너이자 VIP 고객이다.
담당자가 두 명이나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 회사의 차량을 절대적으로 사용해 주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업 체이다. 처음 담당자의 후임에서 또 그다음 후임으로 바뀌면서도 나에 대한 신뢰가 지속되고 있다. 서로의 회사를 걱정하고 아껴 주는 소소한 신뢰와 믿음, 이것이 바로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 아닐까. 지금도 아내와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언제나 1순위로 사조그룹의 제품을 고른다. 왜 많은 제품 중에서 유독 그 회사 제품만 고집하느냐고 아내가 말한다. 우리 회사 제품을 장기간 사용하고 아껴 주는 그 회사와 담당자를 생각할 때 그게 내 나름의 의리를 지키는 방식이다.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파트너를 위하는 신뢰와 믿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꼭 그 회사 제품을 사야 한다고 하니 이제는 아내도 말없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