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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한 Dec 28. 2022

접대도 기술이다

차갑지만 치열했던 영업 이야기

영업을 하는 데 있어 접대가 필요 조건인 것은 맞다.

영업을 하면서 자신의 신념과 진심을 알리고 실현하는 중요한 자리이면서 때로는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후배들에게 가끔 하는 이야기이지만, 영업을 하는 사람은 항상 마음속에 찌꺼기가 있거나 무거운 돌이 있으면 안 된다. 맞는 말이다. 세상 모든 분야의 일이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영업은 얼굴이고 표현이고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마음속에 불편함이 있고 잡념과 근심이 많으면 그의 얼굴과 태도에서 나타나면서 일을 그르치거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접대는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조금은 부끄럽고 치부 같은 이야기이지만 특판팀에서 영업의 영자를 조금씩 알아 가고 있을 때 우연하게 대량 업체를 뚫는 기회를  잡은 적이 있다. 회사의 대표전화로 걸려 온 건이었는데, 배송 차량을 구매해서 전국 마트에 배포할 계획이라며 우리 부서로 직접 구매 문의 전화를 한 것이었다. 사무실 당직이던 내가 전화를 받아 서 그 회사 본사의 모 과장님과 미팅 약속을 잡고 고참과 같이 업체를 방문했다. 그 회사는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상태여서 마트사업 또한 그 수요가 확대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백여 대 발주를 받게 되었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첫 번째 나의 대량판매 작품을 완수했다. 하지만 일은 그 뒤에 발생했는데, 차량 납품 후 업체의 과장님이 왜 자주 안 들어오느냐는 둥 관리에 소홀하다는 둥 핀 잔 아닌 핀잔을 주셨다. 그때는 그런 말이 무얼 뜻하는지 모를 때 라 위에 보고했고, 임원께서 법인카드를 주면서 접대를 하라고 했다. 막상 서울 지리도 잘 모를 때고 접대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고참과 둘이서 과장님께 연락드리고 저녁식사 약속을 잡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분이야 워낙 거래처가 많고 내가 신입사원이고 영업의 초보이다 보니 그냥 한번 찔러 보는 거였고 내 앞에서 우쭐 거리고 싶은 마음이 많았던 것 같다. 자기 집 근처 고급 식당을 잡고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오라고 신신당부도 하셨다. 1차로 고급 횟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사무실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나의 모자란 부분을 코치해 주셨고, 자신이 이 구매를 성사시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많은 자랑을 하셨다. 물론 지루하고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인생 선배님이고 갑이라는 생각에 참고 들었다. 이윽고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나자 이젠 형, 동생 하며 지내자고 했다. 앞으로 잘 밀어줄 테니 편하게 하라면서 격려 아닌 격려까지 해 주셨다. 1차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고, 그분이 미리 잡아 놓은 노래방으로 2차를 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법인카드는 일반 식당 외에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나는 고참에게 어떻게 하냐는 눈짓을 보냈다. 그런 불편한 상황을 인식했는지 과장님은 뭐 하냐고 하면서, 이 정도도 안 되느냐고 역정을 내셨다. 우리는 일단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아무것도 아니니 어서 들어가자고 했다. 단골손님이신 듯 노래방 사장님은 미리 세팅을 해 두셨고 우리는 반 끌려가듯이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사달이 났다. 당시 나는 젊고 어릴 때라 흥을 맞추기에 혼자서도 충분했고, 고참과 과장님은 거나하게 취했기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도우미를 한 분만 불렀다. 물론 과장님 기분만 맞춰 드리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한창 즐거운 분위기가 익어 가는데 갑자기 과장님이 술잔을 탁자에 쾅 내려놓으면서 큰소리를 치셨다. “야, 인마! 너 영업 이 따위밖에 못  해?” 순간 침묵이 흘렀다. 불과 몇 분 전의 유쾌하던 모습과는 상반된 얼굴로 나에게 호통치시면서 계속 혼잣말로 불쾌하다고 중얼거리더니 그냥 나가 버렸다. ‘갑분싸’. 이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순간 나와 고참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뭘 잘못했지? 뭐지, 이 상황은?’ 몇  초간 정적 후에 곧바로 뛰어나가 보니 과장님이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 앞에 서 계셨다. 일단 앞을 막고 우리가 계산하고 나왔는데 가게 밖을 나와서도 나는 과장님 앞에 서서 훈육 아닌 훈육을 받아 야 했다. “야, 네가 지금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부터 “너 인마,  그 정도밖에 안 되냐?”까지, 혀가 꼬인 채 소리치다가 택시를 타고 가 버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진짜 몰랐다. 과장님 옆에서 잘 웃고, 즐겁게 춤추고, 놀아 준 것밖에 없었다. 뭐가 잘못되 었는지도 모른 채 나의 첫 접대는 찜찜하게 끝났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 고참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가 어제 무엇을 잘못해서 과장님이 그랬는지 곰곰 되짚어 보았다. 한참을 기억을 더듬던 고참이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네가 너무 오버 했던 것 같아.” 내가 뭘 오버했을까. 어제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렇게 잘 놀아 주고 노래도 잘 불렀고 기분도 잘 맞춰 줬는데 뭐가 오버였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과장님은 언제부터 기분이 나빠 있었던 것일까. 내 머리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서  결국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다시 업체를 찾아가서 조용히 담당 과장님을 휴게실로 불러서  담배를 피우며 물어보았다. 그날 왜 그리하셨느냐고,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주면 고치겠다고 진심으로 여쭤봤다. 과장님은  본인도 술이 취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건지 한참을 머쓱하게 말없이 담배만 피우 셨다. 이윽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네가 너무 잘 놀아서 그랬다. 내 파트너가 너하고 너무 잘 어울려서 그랬다”였다. 집에 돌아가 생각해 보니 자신도 내게 했던 말이  조금 심한 것 같고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알고 싶다고 해서 말해 주는 거라고 했다. 다음부터는 업체 접대할 때 상대방의 취향을 배려해서 해피엔딩이 되게 하라는 충고도 해 주셨다. 나는 그때 알았다. 우스운 소리 같지만 ‘접대도 기술’이라는 것을.

최근에는 접대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감사와 화합의 모임으로 인식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상대를 대접한다는 단어 그대로의 뜻처럼, 영업을 하다 보면 상대방을 대접할 때는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도플갱어처럼 나 아닌 다른 나를 표현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도 업체 사람들을 접대할 때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주제로 대화하기를 좋아하는지, 또 어떤 행동과 표현을 좋아하는 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전에 알고 가는 게 가장 좋겠지 만 그렇지 않다면 평소 상대방의 인품이나 성향, 분위기를 잘 기억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는 접대만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면서 영업기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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