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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상 Oct 21. 2024

교육과 상대평가? 2

- 교사를 옥죄는 것

'친구가 어떤 문제를 맞히고 제가 틀리면 저는 우울해져요. 다른 친구가 문제를 틀렸을 때 전 아주 기분이 좋고 제가 자랑스러워요.'

'성적이 안 좋으면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없어요.'

'누군가 성적이 나쁘면 그 애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만약 그 아이랑 같이 놀면 나도 멍청해질 수 있죠.‘


어느 방송에서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 아이들을 취재한 내용입니다. 그중 초등학교 아이들이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에 답한 내용입니다.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남이, 친구가 잘되면 우울해지고, 내가 불행해진다는 속성을 어릴 때부터 내재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조금 놀랐습니다. 우리 교육시스템 속에서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얘기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성적을 매개로 친구 관계의 변화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을 이 정도로 당연하듯이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긴 모든 것이 ‘성적’으로 통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소신 발언일 것입니다. 나만의 성적이 아닌 상대평가에 의한 성적이기에 더욱 초초해 집니다. 


내가 주로 접하는 고등학교 아이들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평소에는 온순하다가 점수가 걸린 문제, 상황에서는 속된 말로 눈을 부릅뜨고 따지듯이 덤벼대는 아이들을 보면 무섭습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에서 상대평가 과목을 강의할 때도 학점이 공표되는 날에는 전화기가 몸살을 앓을 정도로 전화나 메시지가 날라옵니다. 상대평가로 인한 결과에 대한 항의와 한 번 더 검토해달라는 부탁입니다. 그중 ‘내가 왜 그 아이보다 못한 점수가 나왔느냐?’는 친구, 학우에 대한 비교 항의는 나를 더욱 섬뜩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친구를 적으로 놓고 표현하는듯한 뉘앙스를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 특히 상대평가는 아예 구조적으로 친구를 적으로, 장애물로 인식해 하는 시스템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갈 수 없는 벽, 이길 수 없는 나의 친구는 이미 내 친구가 아니라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친구를 적으로 인식하고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친구를 따돌리는 왕따 현상, 학교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해서 공부하는 최소한의 협동과 연대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친구들을 적으로 보고 상대방을 제거해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바람직한 시민 소양이니 인간적 유대감이니 하는 소리는 먼 나라 남의 얘기입니다.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인간적, 신뢰적, 통합적 관계 형성을 기대하는 민주 사회에서 어떤 인간은 우등하고, 어떤 인간은 열등하다는 인간의 능력별 계층화를 전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구성을 인정하는 꼴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학교 교육기간을 거치면서 지겹도록 이 우열(優劣)이라는 가치를 철저히 내재화하게 됩니다. 

‘성적은 계층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담임반 아이들에게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교사가 내뱉은 말이 귀에 박힙니다. 실제로 상대평가 서열에 따라 우리 사회는 이미 사회계층이 내재화되어 굳어지고 있는 상태이니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아직도 굳건한 인도의 신분제처럼.


나름 바둥거리며 해보려고 하는 아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심어주는 제도가 바람직한 인간적 성장을 목표로 교육을 한다는 학교에서 버젓이 실행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하긴 이미 우리 학교는 입시만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한지 오래된 마당에 구태여 이상적인 넋두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구태의연한 모습입니다. 언젠가 한 국회의원이 한술 더 떠 수능 성적 원자료를 공개해 전국의 학교를 줄 세우겠다고 부르짖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좋으련만, 서구 선진국들의 교육 사례를 보면 그럴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하지 않고도, 학생과 학교의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도 훌륭한 교육적인 성과를 내는 시스템, 이런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방송에서 한국식 교육으로 기적을 만들었다는 미국 할렘가의 데모크러시크렙 고등학교를 소개하였습니다. 한국어를 제1 외국어로 가르치면서, 10명이 넘는 한국어 교사들이 공부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흑인 아이들에게 한국식 학교의 엄격함을 적용하여 ‘하면 된다’는 꿈을 심어줘 미국 최고 명문대학들에 합격시킨 교육적 실화이었습니다. 왜 이들보다 우리가 더 엄격하게 하고, 엄청나게 공부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포기부터 배우고, 이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우는 것일까요? 자세한 내용은 더 들여다봐야겠지만, 일단 내가 퍼뜩 느낀,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제도적 배경에는 미국의 시스템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로써 열심히 하면 인정을 받고, 도달할 수 있는 정도가 있습니다. 즉,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나만 열심히 하면 끝이 있고,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지도한다면 아이들은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평가 방식은 미국이었기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아니, 우리와 일본을 제외하면 상대평가 시스템을 교육에 적용하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교과 담당교사가 자신의 수업계획 하에 그 계획에 걸맞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평가 방식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구상합니다. 교육에서의 아주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학교를 관찰하였을 때 제일 부러운 것은 교사들의 자율적 평가권이었습니다.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무한정 기회를 주고 격려, 지도할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노력을 이끌어내려고 할 뿐입니다. 영어가 익숙치않은 딸아이가 처음 쓴 레포트의 최하위 점수 평가를 A까지 끌어올리게 만든 것도 반복되는 기회 제공, 그리고 아이의 노력과 교사의 계속적인 지도 덕분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한번 평가하고 '너는 그 수준이다.'라고 박어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의 불만도 없고, 다른 아이들의 성적을 친구들이나 교사들은 신경 쓰지도 않아도 됩니다. 우리 교육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과정과 결과입니다. 


상대평가, 그리고 등급제는 특히 하위권 아이들에게 더욱 심각한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력의 폭은 더욱더 넓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로 갈수록 수업 시간에 엎어져 자는 학생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를 포기하고 엎드려 잘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차피 해도 안 된다’는 체념입니다. 상대평가로 인한 낮은 등급의 아이들은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도록 동기 유발해 주지 못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낮은 등급 아이의 학습동기 저하는 바로 학습부진의 고착화와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가 전부인 세상에서 다른 것들을 열심히 해봐야 알아봐 주지도 않으니 좋아하는 것들조차도 포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이는 아이들의 정신을, 더 나아가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교육에 ‘경쟁’이라는 요인,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상대평가’라는 평가 방식이 존재하는 한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고, 인간적인 인간, 사유하는 인간을 기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적(친구)들을 물리친 우리 학교의 상위권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길러지는가 봅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엘리트들이 됩니다. 그리고 부당한 것을 지시하는 상관이 되기도 하고, 부당함을 알면서도 충실히 행하는 부하 직원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자신의 이익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사회적 악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그렇게 바둥거리며 노력했던 우리 교육의 결과입니다. 


평가의 본질은 줄 세우기를 위한 평가가 아니라, 다음 단계에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순기능을 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교육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또한 상식적으로 어떤 활동이든 목적과 과정, 그리고 최종 단계인 평가가 모두 일치될 때 의도한 효과의 극대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의 목적과 평가 방식이 상반됨으로써 교육 효과의 무효화를 극대화합니다. 아이들의 개별적 잠재적 능력을 개발한다는 교육의 기본 취지에 반하여 친구들 속에서 나의 위치를 고정시키는 상대평가, 마치 능력이 없는 인간들은 걸러내야 한다는 비인간적인 평가 방식이 버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학교평가 방식입니다. 애초부터 정상분포를 전제하고 평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골라내는 교육, 평균인으로 뛰어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할지라도 상대가 더 잘하는 한 절대 평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교육, 결국 교사들과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가장 폐해가 심각한 교육제도들 중의 하나입니다. 비(非) 교육적이다 못해 반(反) 교육적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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