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를 옥죄는 것
'가끔 인사를 해야 하는데...그저 마음 편히 먹고 기도하세요...
그런 일은 이제 앞으로 비일비재합니다...
내가 죽어야 승리합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집니다...'
같은 교무실에 근무하는 교감 샘이 저녁 늦게 승진하고자 하는 다른 학교 부장의 하소연을 받아주고 있는 듯한 통화 내용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교감 샘도 겨우겨우 점수는 채웠지만 매년 교장 승진에서 밀려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인데, 다른 학교의 부장도 나름 어려운 처지에 있는가 봅니다. 이들의 고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어야 삽니다.’입니다. 교사들의 최대 꿈은 교장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교장 자리에 올라가기 위한 과정이 단순한 능력위주가 아닌 비정상적인 고통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 한자리를 위하여 지금까지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며 버텨왔는데, 고지가 코앞인데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입니다.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한 교사 승진제도는 두 가지 트랙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학교 현장을 떠나 전문직 시험을 통해 교육청에서 장학사나 연구사로 근무하며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길입니다. 이는 명수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도 하지만, 1,2,3차 혹독한 시험 대비라는 객관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능력이 안 되는 교사들이 감히 도전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장학사 트랙이라고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평교사가 장학사 시험을 보려면 아무리 능력이 있을지라도 시험 볼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평소 관리자들에게 근무 평점을 좋게 받아야(아마 우 이상이어야 될 것입니다) 지원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시험 보기 전까지는 교장, 교감 눈에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2차 시험을 패스하였다고 해도 3차 근무 학교 현장 검증에서 교장의 한마디에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교육청에 들어가서도 당연히 순응하는 과정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나마 비리(?)나 문제가 적은 승진 코스입니다. 나중에 교감, 교장이 되어서 학교 현장의 감각과는 동떨어진 주로 행정적, 관리적 관점으로 학교 운영을 하고자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긴 합니다. 근본적으로 교사가 학교와 교육청을 왔다 갔다 하는 순환체제 자체는 잘못된 것입니다. 교육청 근무는 행정, 관리가 주력 기능인데, 교육청에서 근무한 교사가 관리자로 학교에 발령받으면 결국 학교를 관리적 관점에서 운영하게 됩니다. 이는 학교를 교육적 기관이 아닌 관리해야 할 기관으로 바라보는 행정적 접근입니다. 선진국처럼 교사와 행정가는 엄격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 모순적 체제는 기회 되면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학교 내에서 평교사로서 승진 점수를 꼬박꼬박 쌓아가며 교감으로 승진하는 경우입니다. 장학사로 나가지 못하는 평교사들이 승진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누굴 교무부장을 시킬까...’
나도 교직생활하면서 이렇게 교장의 위력을 대놓고 휘두르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깜짝 놀랐습니다. 교무실을 들린 교장이 승진을 위해 교무부장 자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두 교사들 앞에서 내뱉은 소리입니다. 교무부장이라는 자리는 교장, 교감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학교의 행사, 교육 활동, 살림을 모두 관장해야 하는 막중하고, 머리 아픈 자리입니다. 모든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자리이지만, 이에 대한 보상으로 가장 높은 근무 평가점수를 받습니다. 그래서 평교사에서 승진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은 가장 높은 근평을 3년 이상 받아야 하므로 기를 쓰고 그 자리를 차지해야만 합니다. 근무 성적 점수는 다른 어떤 노력으로도 메꾸어지는 점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승진하고자 하는 교사들이 많을 경우 교무부장 자리를 미끼로 교장, 교감은 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 하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승진을 원하는 교사가 교무부장 자리기 비어있는 학교를 찾아내고, 그 자리를 얻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모든 가능한 경우 수를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젊은 체육교사가 온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다른 학교로 나가야 한답니다. 우리 학교가 교무부장 자리가 1년 뒤에 비는 것을 알고 교무부장 자리가 필요한 선배 체육교사가 여기로 오려고 하는데 체육교사 티오가 꽉 찼으니 자신이 이동해서라도 티오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과, 특히 체육과같이 선후배 위계가 나름대로 서있다는 교과는 선배의 압력에 후배가 양보하거나 아예 근무하던 학교에서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이동 신청을 해버리는 경우입니다.
내가 경험한 추악한 경우는 형, 동생 하던 교사들이 교무부장이라는 승진을 위한 교두보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경우입니다. 현 교무부장이 1년만 더하면 교감 승진 점수가 채워집니다. 문제는 올해 근무하는 학교를 떠나 정기 전보 대상자에 속한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이 학교에서도 교무부장을 해야지 승진 점수를 채울 수 있는 교사가 대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형, 동생 하던 두 교사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서로를 밀쳐낼 수밖에 없는 상대들이 되어 버렸고, 약간의 소음을 내며 밀어내려는 교사가 승리했습니다. 밀려난 교사는 이동하는 학교에도 당연히 교무부장 자리를 노리는 교사가 있을 것이기에 최소 2,3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자리싸움에서 이기고, 또는 버티기 위하여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나 비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감이 되려고 경쟁하는 교사들 간에는 교무부장을 꼭 거쳐야 하거나 최고 근무성적평정(근평)을 받아야 하는 강박적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임전태세를 갖출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자리싸움에 승리하여 다른 교사를 밀쳐낸 교사에도, 결국 밀려나 다른 학교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교사에게도 나중에 교감 승진이라는 결과를 얻었겠지만 그들의 심정에는 성취감과 동시에 수치심, 그리고 열패감이라는 마음의 상처가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 안타깝습니다.
‘나는 너 같은 여자 싫어. 나는 다른 교사를 키워줄 거야.’
교무부장이 되어서도 힘듭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 교감 승진을 미끼로 금품을 제공받았다 하여 구속되었다는 기사에서 교장이 한 협박입니다. 교장실 청소와 화분 관리, 수업 중에도 불러 부동산 파일 정리, 평균 월 2회 이상 술 접대 등 근무평가 점수를 미끼로 한 교장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교사도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합니다.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나의 주변에서도 암암리에 이러한 행태들이 벌어졌을 것이고, 들려오기도 합니다. 교무부장 자리가 필수 코스이기 때문에 벌어질 수밖에 없는 해프닝입니다. 예전에 교무실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점잖은 교무부장이, 담배도 끊은 양반이 실적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던 교감의 무리한 성화에 그 분통함을 참지 못하고 내가 있는 교무실로 와서 담배를 달라며 그 화를 삭이고 갑니다. 실제로 교무부장만 하면 교감을 나갈 수 있는 교사가 교감의 눈밖에 벗어나서 부장 자리를 못하고 결국은 그 학교에서 명퇴로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교사들이 교장이 되려면 교육을 포기하고 영혼을 팔아야 한다고까지 얘기합니다.
이처럼 승진을 원하는 교사는 교무부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교무부장이 되어서 최고 근평점수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승진을 애쓰는 교사는 교장이 술을 좋아하면 술대접을 주기적으로 신경 써야 합니다. 교장이 일요일에 자기 차가 시동이 안 걸린다며 교무부장에게 빨리 달려와서 고쳐보라는 전화를 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교장의 어깃장에 어느 교사가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 정도니 금품 상납도 포함될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교무부장에게만 부여되는 최고 근평 점수는 승진이 되느냐 안 되느냐 자체를 결정할 수 있는 막대한 위력을 발휘하므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근평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교장·교감에 충성을 다하고,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학교 살림 모든 것에 관여하는 교무부장의 소신 있는 역할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관리자의 의식이 교육적일 때는 다행이지만, 근무평정을 좌우하는 교감과 교장의 지시가 때로는 부당해도 여기에 저항할 수 없는, 그저 교장, 교감의 종속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전근대적인 마인드의 관리자와 승진 욕구를 가진 교사들과의 만남은 학교 운영을 더욱 왜곡하게 됩니다. 이 교사들은 교사나 아이들을 위한 배려보다는 오직 교장의 의중만을 받들어 학교 운영을 좌지우지합니다. 학교 구성원 간의 소통을 기대할 수 없고 민주적 학교운영이 불가능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런 복종적 과정을 거쳐 승진하면 교사들에게 자신이 했던 것처럼 무조건 복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입니다.
신문지상을 자주 채우는 교사 관련 비리들 대부분이 승진제도로 인하여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몸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승진 과정이기에 승진하려는 교사의 모습도 구차해 보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도 구차해집니다. 의외의 데이터이지만 공무원 연금을 받는 대상들 중에 교사들이 연금을 받는 평균 연수가 10년도 안된다고 합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사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인가 봅니다. 특히 승진을 추구하는 교사들이 더욱 심할 것입니다. 신문기사에도 나왔듯이 교장으로부터 최고 근평을 못 받았다 하여 자살까지 할 정도로의 절박한 심정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기에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승진을 원하는 교사들이 마지막 관문인 교무부장 자리에서 근무 점수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이 때문에 한 인간으로서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 구차함과 비루함까지 갖게 만드는 지경입니다. 교사의 전문성과 별 연관성도 없는 점수 쌓기를 위하여 편법과 불법을 자행하고, 자존심까지 버려야 하는, 심지어는 동료들하고도 반목과 투쟁을 벌여가면서까지 구차하게 얻어 가야 하는 점수들입니다. 이처럼 승진이라는 트랙에 발을 담그면 관리자들의 눈치에 맞추어 점수 쌓기에 급급하다 보니 정작 교사로서, 교육자로서 갖추어야 할 의식, 능력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의 능력과 품위, 그리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최악의 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