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벌건 하늘을 가르며 비껴 든 칼.
아뿔싸!
번쩍이는 섬광이 눈을 가린다.
노을 머금은 태양이 저렇게 눈부셨었나.
상관없다.
언제는 유리한 적 있었던가.
이글거리는 머리와 타는 듯 한 심장은,
언제나 물가를 찾아 헤매는
사막 늑대의 것과 같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뜨거움을,
와락 움켜쥐고,
애꿎은 하늘만 올려다보며 내 달리기만 했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위험했기에,
흩어져
제 갈길들을 찾아갔다.
자,
정신 차려.
어차피
기회는 한 번뿐이다.
장수가 세상을 평온하게 하나,
세상은 장수가 편안한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오히려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보니,
낙처(落處)에,
다가왔음을 알겠다.
문득 시원한 바람이 코 끗을 스쳐간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전기가 흐르듯 칼자루 움켜쥔 손은 미세하게 떨리지만
머릿속 안개는 원래 왔던 곳으로 사라진다.
문득,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바람이 불어 칼이 흔들거리는 것인가,
칼이 흔들려 바람이 부는 것인가..
부엉이 소리,
눈을 떴다.
달빛 아래 비스듬히 흩날리는 꽃잎들.
그 사이로,
흰나비 한 쌍 넘실대며 날아들다
서로 교차하는..
이 순간이다!
안장을 떠나,
하늘 높이 솟구친다.
칼끝에 닿은 달빛도
더 이상 눈을 가리 우진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