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 첫째주, 시언 : 비가역적인 사랑

봄호 첫번째 주제 : 사랑

by 어느 저자

우리는 언제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곤 한다.
사랑을 외치고, 노래하고, 쓴다. 사랑을 보여주려 애쓰고, 사랑을 받고 싶어 안달 나기도 한다. 사랑이 부족해 울 때도 있고, 넘치는 사랑을 견디지 못해 분노하기도 한다. 가장 신비롭고, 위대하고, 대단하고, 엄청난... 뭐 그런 수식어가 잔뜩 붙는 감정.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곤 한다.
사랑의 형태는 매번 변화한다. 대상에 따라서, 행하는 사람에 따라서, 관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사랑은 설렘이 되기도, 안정감이 되기도, 아픔과 슬픔이 되기도, 그리움과 먹먹함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인생을 걸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없어졌으면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사랑이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모든 형태의 사랑은 비가역적이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는 사랑은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정말로 사랑은 돌아오는 것일까?

한 인물이 사랑을 하는 단계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처음엔 호기심이다. 그 사람 혹은 대상에게 궁금증이 생기면서 그 대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어떤 관심이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호기심은 주로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어, 이 사람한테 이런 면이 있네?’, ‘나랑 비슷한 걸 좋아하네?’, ‘생각보다 재밌는데?’와 같은 상황들을 겪고 나면,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지게 된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과도 가까운 감정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모르는 무언가, 흥미를 끄는 무언가를 보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느끼곤 한다. 이리저리 만져보고 주물럭거리고, 심지어는 입으로 물어봐야만 그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이 시작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갈망이다. 상대방이 나의 흥미를 끄는 걸 확인하고부터는 점점 그 흥미의 크기가 커져만 간다. 궁금해서 만져본 인형의 감촉이 좋아 자꾸만 찾게 되고 결국, 애착 인형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느낀다.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르고, 모든 상황에서 그를 떠올리게 된다.
선우정아의 ‘구애’라는 노래에서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 사랑받고 싶어요. 더 많이많이.
- I love you. 루즈한 그 말도 너에게는
- 평생 듣고 싶어. 자꾸 듣고 싶어.

그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으면서도 상대방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 대상의 흥미를 갈구하고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란다. 어쩌면 사랑은 한 사람의 짝사랑과 다른 사람의 짝사랑이 모여서 발전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째는 믿음이다. 서로의 흥미와 애착이 확인되고 나면, 감정의 충족이 온다. 대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호기심의 충족과 대상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갈구의 충족, 두 가지의 충족은 대상에 대한 믿음으로 바뀐다. 대상이 어떤 생각을 할지 예측할 수 있게 되고, 대상이 내 생각을 읽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아는 사이, 이때가 ‘사랑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다툼이 잦다. 대상의 흥미를 잃어버리게 될까 봐 잘 꺼내두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그런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면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와의 괴리감이 생긴다. 이때 서로의 괴리감을 견디지 못하면 사랑이 끝이 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잘 견뎌 낸다면 상대방의 본연의 모습을 알아가게 된다. 나의 진정한 모습을 꺼내도 괜찮다는 믿음, 이게 사랑의 핵심이자 절정이다.

마지막 단계는 익숙함이다. 믿음이 두터워지면 서로의 믿음이 당연한 일이 되기 시작한다. 대상이 곁에 없다는 걸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태초부터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 단계에서의 사랑은 짠한 감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때는 대상을 떠올리면 행복하다는 감정보다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먼저 떠오른다. 어떨 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도 있다. 날 때부터 있었던 가족에게 우리는 이런 단계의 사랑을 느낀다. 앞선 단계를 밟지는 못했지만, 가족이기에 처음부터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익숙함은 사랑을 가장 느끼지 못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익숙함 속에서 사랑은 존재를 감춰버린다. 점차 사랑의 끝은 무엇일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게 되면서, ‘사랑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 전문가인 알랭 드 보통은 ‘상대와 함께하는 삶의 필연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이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대상의 익숙함이 대상의 존재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언제 날아가 버려도 모를 듯이.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사랑은 더 이상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사랑의 비가역적이란, 이렇게 사랑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각각의 단계가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서로에게 영향은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사랑의 단계는 그 이전의 단계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랑이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을 순 있어도 절대로 거스를 순 없다. 사랑은 마치 중력과 같다고 누군가 얘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한동안 이렇게 비가역적인 사랑을 싫어했다. 익숙해지는 관계가 익숙해지지 않아서. 당연해져버린 대상이 점점 가벼워지는 그 과정이 싫어서.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 애초에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대단하고, 엄청난...뭐 그런 수식어가 붙는 감정이라면서 그 마지막은 아주 사소한 수식어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끝을 맞이하니까.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가 공허한 끝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사랑 또한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더 고차원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처럼, 중력처럼, 생명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조종이 불가능한 고차원의 물질. 함부로 거스를 수 없는, 비가역적인 자연적 존재의 사랑. 고작 삼차원 세상에 존재하는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차원의 감정이기에.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분명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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